6시간 넘게 버스와 배를 타고 도착한 소매물도. 멀고 멀고 또 멀다. 해발 152m밖에 되지 않는 산 올라가는 게 어찌나 힘들던지. 급경사와 험한 돌계단, 엄청난 더위와 나의 저질 체력과의 만남은 최악의 조합이었다. 그래도 평소 매일 40분 이상은 걷는데 그건 건강을 유지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될 뿐이지 체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조금만 과격하게 움직여도 온몸이 삐걱거리니 제대로 된 저질 체력이다. 소매물도 들어갈 때 배를 좀 길게 탔는데 밥 먹고 바로 탔는데도 멀쩡한 걸 보면 뱃멀미는 안 하는 체질인가 보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기대했던 등대섬은 물때가 맞지 않아서 가보진 못 했고 멀리서 보는 걸로 만족했다. 땀 흘린 후 정상에 올라가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멋진 경치를 보는 건 좋았는데 두 번은 못 갈 것 같다. 거기까지 가기 위해 들인 시간과 돈, 노력에 비해 결과물이 실망스러웠다. 정상에 올라가니 공사하고 남은 건지 자재들이 그냥 널브러져 있어서 위험하단 생각도 들었고, 역사관도 하나 있던데 있으나 마나 별 볼 일 없었고, 아무리 물이 없는 섬이라지만 화장실은 너무나 지저분했고, 섬 자체가 관광지로서 관리가 전혀 안 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차라리 있는 그대로 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어설프게 사람의 손이 닿은 섬은 빛을 잃은 보석 같았다. 그리고 우리나라 관광지 어딜 가나 느끼는 건 마구잡이로 세워진 건물들이 정말 흉물스럽다는 거다. 자연경관이나 주변 건물과 어울리게 지으면 보기도 좋고 장기적으로 보면 관광 수입에도 더 도움이 될 텐데 안타깝다. 빨리빨리 무언가 결과를 얻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여유 없는 한국인의 모습이 관광지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져서 씁쓸했다. 쓰고 보니 무슨 소매물도에 원한 있는 사람 같은데 이건 극히 개인적인 내 감상일 뿐이다. 자연경관 자체는 아름다우니 한 번쯤은 가봐도 좋을 곳이다. 물때를 잘 맞춰서 등대섬까지 갔다 오면 더 좋겠지요.

안 좋은 소리 하는 김에 하나 더.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일행에게 전해 들었는데 이 더운 날씨에 이런 곳에 왔다고 몇몇 사람이 가이드한테 뭐라고 항의를 했다고 한다. 아니 가이드는 짜인 일정에 따라 안내하는 일을 할 뿐인데 날 더운 걸 왜 가이드한테 뭐라 하는지 모르겠다. 가녀린 여성분이 고생해서 안쓰럽더만 사람들 정말 못됐다. 가이드가 날씨까지 조절하면 그게 신이지 가이드냐고. 그렇게 더우면 올라가지 말든가.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 철저히 지켜진다는 걸 또 한 번 목격했다. 나도 같은 인간이지만 인간은 정말 재밌는 동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