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거실의 사자 / 애비게일 터커 / 마티
고양이에 대한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책이다. 고양이가 인간을 간택한 이야기, 현재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는 고양이의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참고로 TNR은 개체 수 조절엔 의미가 없다고 한다) 등이 나오고 후반부엔 톡소플라즈마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톡소플라즈마는 고양이 변을 만지고 그 손으로 음식을 먹어도 걸릴 확률이 15%에 불과하다고 한다. 고양이를 통한 감염을 염려하기보단 평소 손을 잘 씻고 육류를 익혀 먹는 쪽이 톡소플라즈마 예방에 훨씬 도움이 될듯하다. 개는 인간이 길들인 가축이지만 고양이는 스스로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온 침입자이다. 고양이는 귀여운 외모를 무기로 내세워 인간에게 먹이를 얻어먹고 번식을 하고 온갖 보살핌을 받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먹고 자고 싸고 가끔 야옹거리며 인간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밖엔 없다. 옛날엔 쥐잡이 기능이라도 있었지 환경이 깨끗해지면서 쥐잡이 기능은 퇴화하고 있다. 이 얼마나 뻔뻔하고 파렴치한 존재란 말인가! 하지만 그들은 귀엽기에 모든 것이 용서된다. 정말 쓸데없이 지나치게 귀여운 게 문제다. 앞으로도 인간의 등골을 빼먹기 위해 더욱 귀엽게 진화한다니 진정으로 고양이가 세계를 지배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02.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1, 2 / 앤서니 도어 / 민음사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독일 고아 소년 베르너와 앞을 볼 수 없는 프랑스 소녀 마리로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가해자 입장에 서 있는 베르너의 고통과 피해자 입장에서의 마리로르의 고통은 작가의 아름다운 문체에 실려 더욱 비극적으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전쟁이란 소재가 이미 식상할데로 식상해진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 식상함을 깨부술 자신만의 무기가 없다면 그저 그런 소설로 남을 것이고 있다면 독자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 작가가 무기로 삼은 건 비극적인 상황에 대비되는 아름답고 우아한 문체였다. 아름답고 우아하지만 요란하지 않고 잔잔하며 담담하다. 그 때문에 내용과 겉돌지 않는다. 결말 부분에 성장한 마리로르가 나오지 않았다면 더 완벽한 소설이 됐을 듯한데 그 부분은 조금 아쉽다. 왜 전쟁 소설들은 하나 같이 결말에 전쟁이 끝난 후의 주인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전쟁의 아픔을 이겨낸 우리 주인공 자랑스러워!! 하는 마음이겠지만 가끔은 물음표로 남겨두는 편이 더 여운이 남을 때도 있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나는 초반에 조금 적응이 필요한 정도였는데 묘사가 많은 문장을 꺼린다면 어느 정도 읽어보고 구매하는 걸 추천하고 싶다.


03. 멜랑콜리의 묘약 / 레이 브래드버리 / 아작 / E.
SF 문학의 거장이 쓴 SF 단편 모음집이라기에 혹해서 샀다. 표제작 멜랑콜리의 묘약을 비롯해 총 1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취향은 아니었다. SF 소설이라기보단 기묘한 이야기에 더 가까운 글이었다. 그것도 이해하기 난해한 기묘한 이야기. 기발한 상상력에 철학적 메시지까지 녹아있다는데 철학 개뿔도 모르고요. 그냥 재미없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건데 난 SF라도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이런 기발한 이야기보다 우주에 떠다니는 원통 우주선 이야기가 더 재밌으니 말이다. 레이 브래드버리와 함께 SF 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아서 C. 클라크의 글은 재밌는 걸 보면 SF 고전이라고 다 별로인 건 아니고 이야기 배경이 중요한 것 같다. 책 표지에 대한 불만이 많던데 정말 안 어울리긴 한다. 아작 출판사 다른 책 표지는 괜찮던데 레이 브래드버리 시리즈는 표지가 왜 저런지 모를 일이다.  


04.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 살 / 박해로 / 네오픽션 / E.
소재가 흥미로워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리디북스에서 이북 무료 대여를 해줘서 읽게 됐다. 무속 신앙과 눈에 보이지 않는 저주(살)를 소재로 삼고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 '조윤식'은 자신의 계모를 죽이기 위해 무당의 조언을 얻어 살을 날리는 작업을 시작한다. 살을 날리는 방법이란 상갓집에 들러 특정 행위를 하는 건데 부정을 탈 수 있으니 그 행위를 다른 사람에게 들켜선 안 된다. 살을 날릴수록 계모의 상태는 눈에 띄게 악화되고 그에 희망을 얻은 윤식은 계모의 죽음을 확실히 하기 위해 애쓴다. 살을 날릴수록 자신도 함께 망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영화 <곡성>에 '외지인'이 있다면 소설엔 '거울 속 벌거벗은 남자'가 있다. 이 남자의 정체는 나중에 밝혀지는데 상상하면서 제일 소름 끼쳤던 부분이다. 내내 휘몰아치던 전개와 비교해 결말은 조금 심심하긴 했지만 매우 재밌었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무속 같은 토속 신앙을 소재로 한 작품은 보고 나면 묘하게 기분이 찝찝해진다. 결말이 나긴 났는데 화장실 갔다가 뒤 안 닦고 나온 것마냥 개운치 못하다. 뭐 그런걸 신경 쓰나 싶다가도 막상 내 일이 되면 안 좋은 일 생길까 봐 신경 쓰게 되는 사소한 미신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