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만 되면 비가 오는 요즘, 예약해둔 사찰음식 전문점 '발우공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채식을 좋아해서 가보고 싶었던 식당인데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이라고 한다. '발우공양'은 조계사 맞은편 템플스테이 종합정보센터 5층에 자리 잡고 있다. 모든 좌석이 방으로 되어 있고 코스 방식으로 음식이 나오고 음식에 관해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예약은 필수다. 



우리는 인당 4.5였던 원식(願食)을 주문했다. 처음 나온 건 술적심 (식사 전 입술을 적시고 입맛을 돋우며 위에서 음식을 받을 준비를 하도록 도와주는 우리나라 전통 식사법)과 죽상으로 왼쪽부터 방풍 나물죽, 물김치, 껍질을 벗겨 하루 동안 복분자에 절인 방울토마토가 나왔다. 죽은 간이 안 되어 있어서 병원에 온 기분이었고, 물김치는 맛있었는데 향이 독특했다. 술적심으로 나온 방울토마토는 토마토라고 말 안 해줬으면 몰랐을 정도로 토마토 맛이 전혀 안 느껴지고 맛있었다.  

다양한 맛과 향을 보여주는 상미(嘗味)는 청포묵 김무침, 전병과 미나리 겨자채, 봄나물 겉절이까지 세 가지 음식이 나왔다. 청포묵 김무침과 색이 고운 전병에 싸 먹는 미나리 겨자채는 10점 만점에 7점 정도, 봄나물 겉절이는 풀 맛 그 자체였다. 몇 번 먹어본 풀들이었는데 향이 강해서 동행은 못 먹고 내가 소처럼 우걱우걱 다 먹어치웠다. 고수 빼곤 다 잘 먹어요!




담미(噉味)와 승소(僧笑)는 모둠 버섯 강정, 냉면, 연근 초절임, 우엉조림, 곰취두부쌈, 전과 사찰 만두까지. 모둠 버섯 강정이 제일 맛있었고 냉면은 면이 원래 그런 것인지 덜 익은 것인지 식감이 별로였다. 나머진 그럭저럭 이었고 사찰 만두는 맛있었다. 여기 음식을 먹으면서 평소 내가 얼마나 짜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사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유미(愈味)는 연잎밥, 5년 된 동치미 막장으로 끓인 된장찌개, 사찰 김치 두 종류, 봄나물 무침 세 종류가 나왔다. 연잎밥엔 은행과 잣이 함께 들어있었는데 찰진 식감에 연잎 향이 가득했다. 된장찌개는 언제나 옳고요, 잘 익은 무김치도 맛있었다.



마지막 입가심으론 금귤 식혜와 콩고물을 묻힌 말린 무화과가 나왔다. 금귤 식혜는 평소에 먹는 식혜 맛과 달라서 낯설었지만 나쁘진 않았다. 말린 무화과도 맛있었는데 콩고물이 입안을 텁텁하게 해서 콩고물을 안 묻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식사를 마치는데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렸고 적당히 기분 좋은 포만감에 속도 편했다. 계산서 담음새도 참 예쁘다. 다음 주에 생일이라고 동행이 사줘서 맛있게 잘 먹었다. 가장 저렴한 메뉴가 3만 원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자주 먹기엔 부담스럽고 특별한 날이나 손님 접대할 때 좋을 듯한 식당이었다. 다음에 만나면 태국 음식 먹기로 했다. 기다려 솜땀! 너를 먹어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