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3월 독후감

2018. 4. 22. 20:59


01. 개의 힘 1,2 / 돈 윈슬로 / 황금가지

작품의 제목인 '개의 힘'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말로서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몰아낼 수 없는 악과 모두에게 내재된 악의 가능성을 뜻한다고 한다. 소설 내용이나 분위기와 딱 떨어지는 제목이지 싶다. '개의 힘'은 미국과 멕시코 마약밀매 조직간의 30년 마약 전쟁사를 다룬 작품으로 묵직하고 선이 굵은 소설이다. 1975년 CIA 요원이었던 '아트 켈러'는 신생조직인 마약단속국으로 배치받게 된다. 그곳에서 아트는 멕시코 마약왕인 '돈 페드로'를 체포하라는 임무를 받고 멕시코로 향한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소굴로 들어왔지만, 멕시코 경찰들은 아트에게 비협조적이기만 하다. 그런 아트 앞에 운명처럼 나타난 사람이 마약밀매 조직 보스인 '아단 바레라'였다. 아트와 아단, 그 질긴 악연의 시작이다. 주인공 아트가 왜 그렇게 마약밀매 조직 소탕에 목숨을 거는지 그 이유에 대해선 지금도 의문이 남는다. 초반에 나온 동기만으로는 그의 광기 어린 집착을 설명하기 부족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마약밀매 조직 소탕을 위해 목숨을 거는 아트, 지금 생각해보면 아트야 말로 '개의 힘'에 제대로 홀린 것이 아닐까 싶다. 다분히 남성적인 소설이었고 소재가 소재인 만큼 잔인한 내용도 많다. 영화 '시카리오'를 재밌게 봤고 그 이상을 원한다면 읽어봐도 좋을 소설이다. 


02. 차단 / 제바스티안 피체크, 미하엘 초코스 / 단숨 / E.
리디북스에서 무료 대여해준다기에 부랴부랴 가입해서 빌려 읽은 책이다. 무료 이북을 놓칠 수 없지요. 소설은 납치되어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있는 이름 모를 '소녀'와 스토커를 피해 헬고란트 섬으로 도망쳐온 '린다'와 딸의 납치범을 잡아야하는 법의학자 '파울 헤르츠펠트' 세 명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준다. 파울 헤르츠펠트는 위아래 턱이 없어진 끔찍한 시체를 해부하던 중 시체의 머리에서 작은 쪽지를 발견한다. 그 쪽지에 적힌 것은 전화번호 하나와 자신의 딸 이름 '한나'였다. 태풍으로 출입이 차단된 섬에서 린다는 우연히 남성 시체 한 구를 발견하게 되고 시체 옆에 있던 가방을 집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가방 속 휴대폰을 집어 들어 부재중이 가장 많이 찍힌 번호로 전화를 걸게 된다. 린다의 전화를 받은 건 당연히 헤르츠펠트다. 이렇듯 각각 다른 사건으로 보였던 린다와 파울이 전화로 연결되고 한나의 납치범을 잡기 위해 함께 사건을 풀어나간다. 필사적으로 범인의 단서를 쫓으며 태풍을 뚫고 섬으로 가야 하는 헤르츠펠트와 스토커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공포에 시달리며 생전처음 부검까지 해야 하는 린다, 그리고 여전히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번갈아 나오고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헤르츠펠트와 린다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한나를 납치한 범인이 밝혀지지만, 결코 통쾌하거나 개운하지 않다. 우리나라만큼은 아니겠지만 독일도 성범죄보다 탈세 처벌이 더 무거울 만큼 성범죄 처벌이 약한 모양이다. 성범죄 피해자의 대부분은 여성이고 가해자의 대부분은 남성이어서 그런 걸까? 법을 만드는 사람도 형량을 내리는 사람도 대부분 남자니까? 약자의 편에 서서 방패가 돼야 할 법이 오히려 강자의 든든한 창이 되고 있는 현실이 분할뿐이다.  


03.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 보경 / 불광출판사
고양이도 좋아하고 절도 좋아하는데 절에 사는 고양이라니! 게다가 그림은 스노우캣님이 그리셨다니! 이건 무조건 소장용이다! 를 외치며 샀던 책이다. 어느 날 우연히 스님의 처소에 나타난 냥이에게 토스트 한 쪽과 우유를 대접한 것을 계기로 냥이와 보경 스님의 인연이 시작된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살아 있는 생명을 마음에 품는 순간 묵직한 행복과 그보다 더 묵직한 책임감이 동시에 찾아온다. 나는 모든 관계에 겁이 많은 사람이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거면 처음부터 마음을 주지 말자'라고 생각하며 사는데, 이런 나와는 반대로 길거리에서 만난 작고 굶주린 고양이조차 외면하지 않고 챙겨주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길거리의 작은 생명에겐 누군가 호의로 챙겨준 밥이 마지막 한 끼일 수도 있고, 깨끗한 천이 깔린 상자 집이 처음으로 가져보는 따뜻한 잠자리일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렇다. 냥이와 스님의 일상을 읽으며 생명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고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해서 좋았다. 살아생전 법정 스님이 보경 스님의 "글이 좋다"고 칭찬을 하셨었다는데 읽어보니 칭찬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법정 스님 글이 간결함이라면 보경스님의 글은 다정함으로 읽혔다. 


04. 데샹보 거리 / 가브리엘 루아 / 이상북스 / E.
캐나다의 박완서로 불린다는 가브리엘 루아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본문엔 18편의 에피소드가 실려있는데 재밌지도 않으면서 가독성까지 떨어져서 손도 잘 안 가고 읽는 데도 오래 걸렸다. 이북 편집을 누가 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엉망진창 와장창 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문단 정렬 자체가 안 되어 있고 (오른쪽이 들쑥날쑥) 오타도 많다. 주석을 본문에 함께 표시하는 경우 글씨체나 크기를 다르게 한다던가 구역을 나누던가 하는데 이 책은 앞에 *나 +표시가 달렸을 뿐이지 본문과 동일한 편집이다. 내용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책을 편히 읽을 수 없는 편집이었다. 이북 값이 싸지도 않은데 이런 발편집 이북을 그대로 팔아먹다니 정말 돈이 아까웠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들은 꼭 종이책으로 읽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