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독후감
2017.11.08 20:48


01.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 - 미카미 엔

오래 기다렸던 신간이자 시리즈의 최종장이다. 마지막을 어떤 책으로 장식하려나 싶었는데 '셰익스피어' 였다. 다소 식상하지만 이만큼 안전하고 대중적인 작가도 없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셰익스피어의 고서가 일본의 작은 고서 시장에서 거래되는 부분을 읽으며 이것이 실제 상황이라면 전 세계가 주목할만한 일인데 '작가님은 소박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케일이 큰 이야기도 좋지만 이런 소박함도 나름의 매력이 있어 좋다. 마지막인 만큼 시오리코와 지에코의 갈등도 해결되고 다이스케와 시오리코의 관계도 많은 진전을 보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한 이야기라 읽기 편한 소설이었다. 작가님 말씀에 의하면 스핀오프도 기대할만하고 애니메이션 제작도 확정이라고 한다. 눈과 가슴만 큰 미소녀 그림체가 아니라면 애니도 보고 싶은데 이미 책에 실린 그림이 그런 쪽이니 큰 기대는 하지 말아야겠다.


02. 빛의 물리학.e - EBS 다큐프라임 [빛의 물리학] 제작팀
EBS에서 방영한 동명의 6부작 다큐멘터리를 엮은 책이다. 현대 물리학의 핵심 기둥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초보자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한 번쯤 들어는 봤지만 정확한 개념은 모르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까 싶어 읽게 됐다. 영상을 기반으로 한 책이라 그런지 설명용 사진과 그림이 잘 정리되어있고 문장도 쉽고 잘 읽히는데 개념 자체를 정확히 이해하는 건 어려웠다. 우선, 상대성이론에서 빛의 속도는 절대적이고 시간은 관찰자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건 알겠다. 그 예로 우주선에 탄 쌍둥이 언니와 지구에 있는 쌍둥이 동생의 노화 속도가 다르게 보이는 현상이 나온다. 같은 1초일지라도 우주선 안에서의 시간과 지구에서의 시간이 상대적이기 때문에 (우주선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주선 안의 시간은 느려진다) 둘의 노화는 다르게 보인다. 이렇듯 상대성이론의 기본 개념은 이해가 되지만 양자역학으로 넘어가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들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라 그런지 이해가 더 어렵다. 그런 이유로 원자 세계는 다른 기회에 넘보기로 하고 우선 다큐멘터리부터 시청해야겠다.


03.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e - 제임스 M. 케인
알베르 카뮈가 이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이방인>을 썼다고 한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바로 이어서 읽은 책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었다. 신기한 우연이다. 실제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1934년에 처음 발표되어 '느와르' 장르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대략 줄거리는 이렇다. 빈털터리 신세인 주인공 프랭크는 고속도로변 작은 간이 식당에 들어갔다가 주인 닉의 제안으로 식당에서 일손을 돕게 된다. 프랭크는 그리스인 주인 닉과 그의 아름다운 아내 코라와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 뻔하게도 닉의 아내 코라와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눈이 먼 그들은 닉을 살인하고자 실행에 옮기지만 미수에 그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좀 더 철저한 살인계획을 세운 뒤 실행한 두 번째 시도에선 닉을 영원히 잠재우는 데 성공한다. 오갈 곳 없는 프랭크에게도 친절하고 아내에게도 잘하는 남자였는 데 저리 허망하게 죽다니 이 소설에선 닉이 제일 불쌍하다. 문학 세계에서 불륜과 바람만큼 잘 팔리는 소재도 없고, 부적절한 관계임을 알면서도 빠져들게 되는 커플도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이 소설 속 불륜 커플에겐 그 어떤 매력도 느끼지 못했다. 이제부턴 책 소개 문구에 느와르나 하드보일드가 붙어 있는지 잘 살펴보고 책을 사야겠다. 정말 내 취향이 아니다.


04. 이인.e - 알베르 카뮈
몇 년 전 알라딘에서 이벤트로 무료 배포할 때 받아 놓은 책이다. 나의 첫 이북인 셈이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기시감에 전에 읽었던 책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 유명한 '이방인'이었다. 내용은 같지만, 제목이 달라지니 전혀 다른 책처럼 느껴진다. <이방인>은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종이책도 가지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이북으로 먼저 읽게 됐다. 소설은 1부,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주인공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을 통보받은 후부터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살해하기까지 18일간의 이야기고, 2부는 뫼르소가 체포된 후 재판을 받는 1년간의 이야기다. 글 자체는 잘 읽히지만, 그 안에 내포된 의미를 찾아내는 건 뒤편의 해설을 읽고 나서야 희미하게나마 형태가 잡힌다. 자신의 감정에 덧칠을 씌우려 하지 않는 뫼르소는 그 때문에 우리에게 이인이 될 수밖에 없다. 뫼르소와는 달리 감정의 더께가 두꺼운 우리는 그를 두려워하고 혐오하며 배척한다. 그의 입장에서 진정한 이인은 우리일 것이다.


05. 보이드 씨의 기묘한 저택.e - 하지은
<얼음나무 숲>으로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던 저자의 다른 소설을 읽어 봤다. 롤랑 거리 7번가 7층 저택의 꼭대기엔 누구도 얼굴을 본 적 없다는 베일에 싸인 주인 보이드 씨가 산다. 독자는 현관부터 시작해 1층부터 6층까지 차례로 올라가며 다양한 입주자를 만나게 된다. 입주자 중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3층에 사는 라벨이다. 카페에서 일하는 친절하고 성실한 청년 라벨에겐 다른 사람의 소원을 이뤄주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하지만 소원을 말하는 당사자는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너무 사소해서 허무하거나 끔찍한 소원을 빌어 파멸에 이른다. 아아, 욕심 많고 어리석은 인간이여.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은 가상의 도시인데 읽는 내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영국 런던이 떠올랐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드라마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 '기묘한 이야기'의 영국판을 읽는듯한 소설이었다. 라벨이나 보이드 씨에 대해서 의문만 남긴 채 끝나서 아쉽기도 했지만 재밌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