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독후감

2017. 7. 31. 15:01


01. 희망장 - 미야베 미유키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 그 네 번째 이야기. 드디어 스기무라가 탐정 사무소를 차렸다. 짝! 짝! 짝! 개업 축하해요. 탐정 사무소라지만 거창한 건 아니고 동네 낡은 건물을 빌려 이웃들의 의뢰를 받아 사건을 해결해주는 '서민 생활밀착형 탐정'이다. 아무리 작은 사건이어도 해결을 위해선 꼼꼼한 조사와 오랜 시간이 필요하므로 서민 생활밀착형 탐정이라고 우습게 봐선 안 될 일이다. '사건은 작지만, 고뇌는 깊다'라는 문장 그대로 본문에 실린 네 가지 이야기 모두 끝 맛이 썼다. 사건 해결도 사건 해결이지만 이번 시리즈에선 스기무라가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탐정이라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기운을 차린 것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그나저나 요 몇 년간 읽은 미미여사 현대물은 확 와닿는 게 없어 슬프다. '화차'나 '이유' 같은 글은 이제 안 써주시려나. 북스피어에서 곧 나올 시대물을 기대해봐야겠다.


02. 고양이 그림일기 - 이새벽
고양이 덕후의 뇌엔 주기적으로 '고양이가 부족해! 고양이 충전이 필요해!'를 외치는 부분이 존재한다. 물론, 과학적 증거 따윈 없다. 그저 주기적으로 고양이가 보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산 책인데 그림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동물이나 인물은 모르겠지만, 사물이나 풍경이 장 자끄 상뻬 그림과 조금 비슷한 느낌이다. 장 자끄 상뻬나 스노우캣 같은 스타일의 그림을 좋아하는지라 이 책의 그림도 너무 좋았다. 두 마리의 고양이 장군이, 흰둥이와 함께하는 일상이 끝까지 행복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해서 마음 아프기도 했다. 나 또한 오래전 고양이에 대해 아무 지식 없는 냥집사였을 시절, 고양이를 외출냥으로 키웠다가 잃어본 경험이 있다. 그 이후로 고양이를 외출냥으로 키우는 건 결사반대하는 편이다. 고양이가 개처럼 산책이 필요한 동물도 아니고 굳이 로드킬이나 영역 싸움, 무개념 인간들의 해코지 위험을 무릅쓰고 외출냥으로 키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집사의 성향에 따라 저마다 육묘 방법은 다르겠지만 외출냥만큼은 지양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각한 이야기는 이만 접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지금까지 읽어본 냥서적 중에서도 만족도가 높은 책이었다.


03.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e. - 장 지글러
'기아'라는 단어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TV에서 보던 아프리카의 굶주린 어린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아 문제를 다루는 이 책의 표지조차 전형적인 기아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설마 저자가 그런 표지를 선택한 건 아닐 테고 한국 출판사 쪽의 무신경함이 씁쓸할 뿐이다. 그나마 개정판에선 표지를 바꾸어서 다행이다. 나는 월 3만 원 적은 돈을 기부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일 뿐, 단 한 번도 그들이 왜 굶주리게 됐는지 원인을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말이다. 저자는 기아의 발생 원인에 대해 아들이 묻고 아빠가 대답하는 문답 형식으로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다. 기아 발생의 원인은 그들 개개인의 게으름이 아닌 전 세계에 걸친 사회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 저자가 꼽는 기아의 원인에는 다국적 기업들이 주도하는 곡물 투기, 특화 작물 재배로 인한 식량 부족, 선진국의 농산물 가격 덤핑, 저발전국 지도층의 부패 등이 있다.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될만한 문제가 없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다. 인류는 이미 30여 년 전에 120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 자급력을 확보했다. 2017년 현재 세계 인구 75억 명이 모두 먹고도 남을 양이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에 굶주리는 사람이 존재한다. 인간의 욕심이 또 다른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힘으론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인류의 문제를 알고 나니 상실감과 답답함이 밀려들었다.


04. 청춘의 독서 - 유시민
최근 많이 출간되는 가벼운 책 소개 책으로 예상하고 집어 들었다 낭패를 본 책이다. 책 소개 책은 맞는데 소개하는 책의 면면이 하나같이 어려운 녀석뿐이다.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모로 누워 푸쉬킨, 맹자, 다윈에 대해 읽다 보면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잠들기 일쑤였다. 소설과 수필을 편식하는 나에게 이런 인문학 서적은 어렵기만 하다. 반대로 인문학 서적만 편식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신기하다 신기해. 10대, 20대에 이런 책을 읽고 이해했다니 크게 될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지금까지 읽은 저자 책 중에서 가장 안 읽히고 가장 어려운 책이었다.


05. 울지마, 팔레스타인 e. - 홍미정, 서정환
뉴스나 기사로 수없이 접한 '팔레스타인 분쟁'이지만, 자세한 실상은 모르고 있었다. 찾아보니 팔레스타인 분쟁을 다룬 책은 여럿인데 이북은 몇 권 없어서 그중에서 가장 나아보이는 책으로 선택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성서에 나온 유대인의 후손이므로 팔레스타인 땅은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 솔로몬 성전의 일부였던 '통곡의 벽'을 든다는데 고고학 연구 결과 아무리 후하게 쳐도 통곡의 벽은 로마 시대 이후로 봐야 한다고 한다. 지금의 유대인과 구약성서에 나온 유대인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핍박하며 그들의 땅을 뺏는데 혈안이 되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내 눈엔 그저 그들이 강대국의 힘을 등에 업고 신과 종교를 팔아 이익을 얻으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진정으로 신을 믿는 종교인이라면 개인을 넘어 하나의 국가를 저렇게까지 극한 상황에 몰아넣을 순 없는 것이다. 그들은 과거 나치에게 무참히 학살당한 홀로코스트를 잊은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