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독후감

2017. 2. 18. 20:48

01.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 조엘 디케르


02. 나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한설희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 씨' 작가가 쓴 에세이. 독신 여성의 소소한 일상을 훔쳐보며 공감하는 것을 좋아해서 새해 첫 책으로 사봤다. 하지만 글을 읽어 나갈수록 공감대를 형성하기엔 기본 성향 자체가 다르다는 게 느껴져서 아쉬웠다. 사노 요코처럼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 타입이거나 루나파크님처럼 '소심하지만 혼자임을 즐기며 아기자기한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는 타입'이 좋은데 이 작가님은 둘 다 아니었다. 글이 별로가 아니라 나와 맞지 않는 글이었다.


03. 꿈꾸는 책들의 미로 - 발터 뫼어스
작가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와 이 백 년만에 만나는 새로운 부흐하임 그리고 인형중심주의 이야기. '꿈꾸는 책들의 도시'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샀던 책인데 여전히 상상력은 풍부했지만, 상당히 지루했다. 특별한 사건이나 악역 없이 인형중심주의라는 소재를 파고들다 보니 더 지루하게 느껴졌다. 인형극 묘사를 읽을 땐 흥미롭다가도 인형중심주의에 대해 깊게 파고들 때는 대체 이게 뭔 소린지, 뭐하자는 건지란 생각만 들었다. 상상력을 압도하는 지루함이었다.


04.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e - 바바라 오코너
영화를 재밌게 봐서 원작 소설도 궁금했던 책인데 이북 리더기 사자마자 가장 먼저 대여해서 읽어봤다. 영화와 소설을 비교하자면 영화는 동화를 닮았고 소설은 현실과 닮았다. 이 영화 볼 때 주변에 상영관이 없어서 멀리 독립 영화 상영하는 영화관까지 가서 봤었는데, 발품을 판만큼 영상이 예쁘고 내용도 마음에 들어서 보고 나오면서 기분 좋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소설은 영화보다는 훨씬 건조하고 현실적이어서 영화처럼 예쁜 이야기를 기대하고 읽는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히려 현실적이어서 더 절실히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다.


05. 판사유감 - 문유석
지난해 읽었던 '개인주의자 선언'이 마음에 들어서 문유석 판사의 책을 두 권 더 샀다. 이 책은 판사님의 첫 번째 책이자 판사님이 10년동안 판사직을 수행하면서 법관 게시판과 언론 등을 통해 공개했던 글을 엮은 책이다. 그동안 막연히 상상했던 판사의 이미지를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미지로 바꾸는데 도움이 된 책이고, 가장 딱딱한 자리에 앉아 있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시선을 가진 개인주의자 문유석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06. 허니문 인 파리.e - 조조 모예스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린 두 여자의 상황을 번갈아 보여주며 '결혼과 사랑에 대해 생각해봅시다'란 뻔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소설인데 영 별로였다. 뭔가 쓰다만 글 같다는 생각도 들고 누군가의 말마따나 빌려보는 시간도 아까운 책이었다. '미 비포 유'와 같은 작가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럽다.


07. 웃음 1,2.e - 베르나르 베르베르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오래전 '개미'를 읽고 감탄을 거듭했다가 이후엔 뭘 읽어도 '개미'만 못해서 한동안 멀리했던 작가다. 이북 리더기가 재회시켜준 작가랄까. 독특한 소재와 기발한 발상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너무 그런 쪽으로만 가다 보니 소재만 다르지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이 책의 주제는 '웃음'이다. "인간은 왜 웃는가?", "웃음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코미디언의 죽음으로부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데 지루할 틈 없이 재밌었고, 본문 사이 사이에 실린 유머를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첫 작품이 지나치게 강렬했을 뿐, 여전히 글 잘 쓰는 작가임에는 분명하다.


08. 미스 함무라비 - 문유석
문유석 판사님의 세 번째 책. 이 책도 에세이인줄 알고 샀는데 읽다 보니 소설이다. 오호~ 판사님이 이제 소설까지 쓰시다니! 재주도 많으시다. 서울중앙지법 44부로 발령받은 초임 판사 '박차오름'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그 화끈한 성격 덕분에 대중들에게 '미스 함무라비'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다. 우리 미스 함무라비 박차오름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이야기의 기본 골격이고 한 단락이 끝나면 판사님이 짧게 설명까지 곁들여주신다. 단순히 법정에서 판결 내리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법정 밖에서의 모습을 앞뒤, 양옆, 위, 아래까지 모두 보여주는 이야기라 매우 흥미롭고 재밌었다.


09.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e - 레이 얼
동명 영국 드라마를 재밌게 봐서 이북으로 빌려 읽어봤다. 한참 주변 시선에 예민한 사춘기 시절, 예쁘지 않은 외모 때문에 폭식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레이 얼은 어느 날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현재의 레이는 과거에 일기를 쓰기 시작한 레이가 얼마나 기특할까? 책으로 출간되는 것도 모자라 드라마화돼서 엄청난 화제가 됐으니 과거의 상처는 확실하게 미래의 영광이 된 셈이다. 원작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이 핀과 레이의 관계였는데 드라마와는 달리 둘 사이에 별다른 사건이 없어서 조금 아쉽긴 했다. 그깟 살이 대수랴! 매력적이고 유머러스한 레이는 존재자체만으로 사랑스럽다. 


10.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프랑수아즈 사강
도대체 이런 분위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처음부터 끝까지 나른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프랑스가 소설로 태어난다면 이 소설이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좋게 말하면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에서 방황하는 오래된 연인의 이야기'이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권태기 온 연인이 각자 바람 피우다가 다시 재결합하는 이야기'인데 이런 뻔한 이야기가 왜 '아름답다'고 느껴지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그 알 수 없는 아름다움 때문에 이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11. 오베라는 남자.e - 프레드릭 배크만
영화가 좋아서 원작 소설을 꼭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드디어 읽었다. 오베는 원리원칙에 따라 평생을 살아온 고지식하고 고집불통인 남자다. 온통 흑백이었던 오베의 세상에 아름다운 색이 되어준 사랑하는 아내는 6개월 전 세상을 떠났다. 이제 오베 또한 아내의 뒤를 따라가려 한다. 자살 말이다. 하지만 망할 놈의 멍청한 이웃 덕에 오베의 자살시도는 매번 미수에 그치고 만다. 고집불통이지만 은근히 아는 것도 많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은 똑똑한 오베와 멍청해 보이지만 (적어도 오베의 눈에는) 마음 따뜻한 이웃들의 물과 기름 같은 일상은 가만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이미 영화로 내용을 다 아는데도 마지막엔 또 눈물이 났다. 한국인들은 꽤 자주 타인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보이며 그걸 정이라는 이름로 정당화하려 한다. 내가 보기엔 쓸데없는 오지랖 내지는 예의 없는 호기심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진짜 정이란 게 있다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오베와 이웃들의 관계가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도 소설도 참 좋았다.

*제목 뒤에 e가 붙은 책은 이북으로 읽은 책이며 리뷰 없이 링크 걸린 책은 단독 포스팅으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