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와 레몽의 집 - 신이현
작가의 시부모 루시와 레몽이 사는 곳은 프랑스와 독일 국경의 산골 마을 '알자스'. 파리에 사는 아들 부부가 알자스 마을에 들를 때마다 하나씩 쌓여가는 추억이 가득 담긴 책이다. 세상에서 겨울이 제일 아름다운 곳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사진 몇 장만 봤는데도 알자스 겨울의 아름다움이 충분히 전해진다. 하지만 이 책을 산 이유는 프랑스나 알자스 마을 때문이 아니고 요리 때문이다. 루시가 만드는 알자스 전통 요리부터 시작해서, 새콤달콤한 디저트까지 그 맛이 궁금해지는 요리가 한둘이 아니다. 그림 같은 마을에서 길러낸 신선한 재료로 만드는 요리는 아주 건강한 맛일 것만 같다. 도시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몸이라 아무리 경치가 좋은 곳이라도 시골에서 평생 살지는 못할 것 같지만 일 년에 한 두 번씩 들러 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어디까지나 꿈일 뿐이지만.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 미카미 엔
전작 완결도 안 내주고 신작을 출간해서 조금 삐졌지만, 신작도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전작에 고서점과 고서가 있다면 이번엔 사진관과 사진이 있다. 고서나 사진을 통해 추리하는 부분도 마음에 들지만 그보다 더 마음에 드는 건 오래된 것, 느린 것, 익숙한 것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편안함이다. 세월의 더께가 쌓인 서점이나 사진관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음이 한없이 차분해짐을 느낀다. 몸은 이미 디지털의 편리함에 길들여졌지만 마음만은 아직 아날로그에 더 벅차게 반응하는 이중적인 인간이다. 시리즈의 시작, 아직 갈 길이 멀다.


부엌신 - 양귀자
작가 양귀자가 한정식 전문 음식점을 차리게 된 계기부터 시작해서 준비 과정, 개업, 휴업, 리모델링, 재개업까지의 이야기가 꼼꼼히 기록되어 있는 책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건 역시나 돈과 사람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었을 것이다. 돈에 치우치면 사람이 떠나고 사람에 치우치면 돈이 떠난다. 길게 내다본다면 사람을 선택하는 쪽이 현명하겠지만, 말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더럽고 치사해도 남의 돈 받는 월급쟁이가 가장 마음 편하다는 말엔 반박의 여지가 없다.

책을 다 읽고 혹시나 아직도 영업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역시나 13년도에 영업을 종료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차려주는 식탁'의 맛은 평생 궁금증으로 남겨둬야 할 것 같다. 영업 여부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봤는데 이 책을 음식점 홍보용이라고 생각하고 욕하는 사람이 있어서 놀라웠다. 알려질 대로 알려진 유명 작가가 책까지 써서 자기 음식점을 홍보한다고 욕하다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인 건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설사 홍보용으로 썼다 한들 그게 무슨 잘못인지 나는 모르겠다. 작가가 무슨 무소유를 실천해야 하는 직업도 아니고 자기 돈으로 자기 사업하면서 글 좀 썼기로서니 그걸 딴지를 걸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모든 요일의 여행 - 김민철
<모든 요일의 기록>을 좋게 읽어서 신작이 나왔기에 바로 주문해서 읽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아일랜드, 일본, 스리랑카 등 세계 여러 나라가 나오지만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건 작가가 살고 있는 망원동이었다. 아파트 앞에 커다란 운동장이 있는 망원동. 그 운동장의 정체는 비가 많이 내린 어느 날 밝혀지게 된다. 단순한 운동장이 아닌 물난리를 대비해 만든 '망원유수지'. 예약이 취소되어 심심했던 참이라고 돈을 받지 않는 네일샵, 커피를 살 때마다 이런저런 신제품을 맛보라고 수줍게 내미는 커피집 아저씨,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전을 부치는 전 가게 사장님은 길 가던 그들을 불러 맥주까지 내어준다. 낯선 곳에서 만나게 되는 낯선 사람의 친절도 기분 좋은 일이지만 내가 사는 곳, 우리 동네에서 만나게 되는 친절은 그 거리만큼이나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채식주의자 - 한강
맨부커상이 뭔지는 모르지만 다들 읽으니 나도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샀다. 한강 작가의 책을 읽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 읽었던 건 <희랍어 시간>이었는데 특유의 분위기가 참 좋았었다. 솔직히 상 받은 책들은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는 게 대부분이다. 역시나 이 책도 그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는데 읽히기는 또 무섭게 잘 읽혀서 더 어렵게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이 책을 읽고 이 나라 남자와의 결혼은 정말 할 게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부인,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며느리가 아닌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단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