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독후감 : 2016.11~15

2016. 7. 13. 15:44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 에세이 덕후지만 신간 에세이가 나와도 선뜻 손이 안 가는 이유는 전에 읽었던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다. 도대체 왜 겹치는 거지? 출판사에서 계속 제목만 바꿔서 개정판을 내는걸까? 아니면 판권을 가진 출판사가 여러 곳이어서? 출판 쪽은 문외한이라 정답이 뭔지는 모르겠다. 이 책은 제목에 들어가 있는 '라오스'라는 세 글자에 낚였다. '먼북소리'를 상상하며 라오스와 하루키의 조합을 기대하며 읽었는데, 정작 라오스에 대한 내용은 달랑 몇 장뿐이었다. 게다가 예전에 읽은 것 같은 마치 꿈에서 본듯한 글도 몇 개나 있었다. 신간이라 비쌌는데 ㅠㅠ 웬만하면 책 읽다가 본전 생각 안 하는데 이런 짜깁기 형식의 책은 본전 생각이 간절해진다. 하루키 아저씨 '먼북소리' 같은 여행기 하나 더 써주세요.


박찬욱의 몽타주 - 박찬욱
박찬욱 감독이 자신의 딸에 대해 쓴 글을 우연히 읽고 재미있어서 그 글이 실렸던 책을 찾아서 읽게 됐다. 본문에도 여러 번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셨는데 본인이야 어렵게 썼든, 쉽게 썼든 읽는 사람은 편하고 잘 읽히니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시나리오 쓰시는 분이라 일상적인 글도 잘 쓰시는구나 하며 감탄하며 읽었다. 내게 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세 편의 영화로 기억된다. 이상하게 이후의 영화들은 취향에 안 맞았는지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최근에 개봉한 '아가씨'는 원작 소설을 읽은 탓에 더더욱 관심 밖이었다. 1부는 사적인 이야기였고, 2부는 본인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 3부는 전문적인 영화 해석이 실려있다. 인간적인 면모가 가장 많이 드러나는 1부가 제일 좋았고 2부도 거의 다 본 영화들이라 흥미로웠는데 3부는 너무 전문적인 영화 이야기라서 이해 불가능이었다.


뼈 - 정미진
'포토 소설'이 뭔가 싶었는데 글자 그대로 사진과 소설이 함께 실린 소설이다. 주인공 준원은 어느 날 현금 5억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살아서 보기 힘들 거란 메시지와 함께 CD가 동봉된 택배 박스를 발견한다. CD 속 영상엔 2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 하진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2년 전 헤어져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15시간 동안의 기록. 과연 준원은 하진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엄청 재밌어' 까지는 아니지만 지루하진 않았고 사진과 함께 글을 읽는다는 게 새로웠다. 하지만 굳이 사서 읽을만한 책은 아니었다.


악의 교전 - 기시 유스케
오래전 '검은집'을 읽고 인간에 대한 혐오감이 우주를 뚫을 만큼 높아져서 이 작가의 책은 부러 멀리했었다. 일본 작가들이 유독 인간의 혐오스러운 모습을 더욱 더 혐오스럽게 그려내는 것 같다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이 소설도 재밌다고 해서 도전하는 기분으로 읽었는데 다행히 검은집만큼의 충격은 없었다. 미친 학생이 아니라 미친 교사가 나와서 조금 신선하기도 했다. 성공한 미친놈 '하스미'는 학생들에게 인기 만점, 동료 교사들에게도 신뢰받는 영어 교사다. 하지만 조금만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그의 추악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문제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순간 생사를 달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마치 개미 새끼 죽이듯 살인을 일삼는 것도 경악할 만 하지만 하스미를 보고 가장 놀라웠던 건 보통 사람들은 모든 것을 포기할만한 순간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낸다는 데 있다. 이토록 미치게 머리 좋고 미치게 긍정적인 인간이라니. 놀랍도다. 주변인들이 목숨 부지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본인은 인생 살기 참 편하겠다 싶다. 


익숙한 새벽 세시 - 오지은
타고난 기질이 우울한 사람들이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들은 평생 우울함과 헤어질 수 없다. 미쳐 날뛰지 않도록 어르고 달래서 잘 데리고 사는 수밖에. 여기 나처럼 우울한 인간이 한 명 더 있었으니 싱어송라이터 오지은이다. 직업도 사는 곳도 모두 다르지만 비슷한 감성이 있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글이었다. 책 제목이 저자의 노래 제목과 같다고 하던데 글을 읽어보니 듣지 않아도 어떤 음악을 하는지 알 것만 같다. 코드가 맞는 글을 읽는 건 언제나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