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기리유 에리코는 30여 년 만에 세상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그녀가 사랑하는 연인은 회랑정이라는 여관에서 일어난 화재로 사망하고 만다. 단순 사고로 인한 화재가 아닌 타살을 의심한 그녀는 죽은 연인의 복수를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모든 준비를 끝낸 기리유 에리코가 연인을 잃었던 회랑정 여관으로 다시 발걸음 한 순간 복수는 시작된다.

비록,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이지만 기리유 에리코라는 한 인간을 동정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일생 단 한 번 모든 것을 바쳐 사랑했던 연인이 죽은 것만 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일일 텐데, 그 죽음의 진상이라는 것이 너무나 가혹하다. 더 마음 아픈 사실은 기리유 에리코가 처음부터 어느 정도 범인을 눈치채고 있었다는 점이다. 범인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자신의 사랑 또한 사라진다는 걸 알면서도 확인할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이 너무나 절절하여 너무나 슬펐다.

작가의 초기 작품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여러 부분이 허술한 소설이었다. 이렇게 쓰고 찾아보니 정말 초기작이었다. 특히, 30대 여성이 단순한 분장술만으로 타인에게 발각되지 않고 며칠씩이나 노인 역할을 한다는 게 가장 이해 안 되는 설정이었다. 심지어 형사도 못 알아보다니!! 기리유 에리코는 일본에서 비서를 할 게 아니라 헐리웃 특수분장팀에 취직을 해야 했다. 천재적인 소질을 복수하는데 불태워 버리다니 안타까운 일이로다. 농담은 이쯤 해두고, 크게 문제 되는 설정은 아니어서 마음으로 이해하고 계속 읽어나가기는 했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는 설정인 건 확실하다.

다음번엔 <백야행>처럼 좀 더 깊이 있는 작품으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내 마음을 지탱하던 뭔가가 툭, 하고 절망적인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형사들이 뭐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소녀처럼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다. 하지만 울면서,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절규를 터뜨렸다. 사토나카 지로는 살해당했다. 나의 지로는 이제 세상에 없다. - P.29

밤새도록 울고,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연애를 꿈꾸어서는 안 된다. 나와는 인연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자. 하늘은 나에게 미모 대신 지성을 주었다. 앞으로는 그 지성을 닦는 데 정진하자. 그리고 연애를 동경하는 마음은 가슴속 깊이 묻어두고, 절대로 다른 사람이 눈치 채게 해서는 안 된다. - P.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