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필독서, 추천도서에 빠짐없이 들어 있는 책 = 재미는 없지만 유익할지도 모르는 책이다. 왠지 나도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우선은 사놓고 책장에 전시한다. 이런 책은 꽂아만 놔도 뭔가 있어 보이는 관계로 책장을 바라볼 때마다 흐뭇하기 짝이 없다. 평소엔 내 입맛에 맞는 추리 소설이나 수필을 주로 읽다가 가끔 쓴맛을 보기 위해 하나씩 꺼내 읽는다. 여러 사람에게 검증된 만큼 확률적으로 괜찮은 책이 많은 편이지만 솔직히 손도 안 가고 정도 안 가는 책도 많다.

제목을 세 글자로 줄여 '난쏘공'이라 불리는 이 책은 30여 년간 꾸준히 100만 권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100만이란 숫자 안엔 도대체 이 책의 무엇이 독자들을 끌어들이는지 궁금해서 읽은 나 같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한국 문학의 우울함에 질려갈 즈음 쓰디쓴 한약 먹듯이 꾸역꾸역 읽은 책이었는데 참고 읽은 보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 책이 쓰인 70년대에도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엔 수많은 '난장이'와 '꼽추'와 '앉은뱅이'가 존재한다. '물질'이 중심인 사회에서 '사람'은 그저 고장 나면 버리면 그만인 부속품에 불과하다. 사회로부터 버려지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위로, 더 위로 올라가 보려 하지만 이젠 그마저도 쉽지 않다. 부는 세습된다. 가난 또한 세습된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취업도 어렵고, 결혼도 어렵고, 육아도 어렵다. 이 나라에선 숨 쉬고 사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난장이가 꿈 꾼 '사랑'과 '희망'은 보이질 않는다.

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질문만 있고 대답하는 이는 없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 곤봉이나 주먹만이 폭력이 아니다. 우리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젖먹이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도 폭력이다. /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없는 나라는 재난의 나라이다. 누가 감히 폭력에 의해 질서를 세우려는가? / 십칠세기 스웨덴의 수상이었던 악셀 옥센스티르나는 자기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 세계가 얼마나 지혜롭지 않게 통치되고 있는지 아느냐?" 사태는 옥센스티르나의 시대 이래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 P.110

아버지는 사랑에 기대를 걸었었다. 아버지가 꿈꾼 세상은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였다. 그 세계의 지배계층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했었다. 인간이 갖는 고통에 대해 그들도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호화로운 생활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네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버리고, 바람도 막아버리고, 전깃줄도 잘라버리고, 수도선도 끊어버린다. 그런 집 뜰에는 꽃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날아 들어갈 벌도 없다. 나비도 없다. 아버지가 꿈꾼 세상에서 강요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사랑으로 비를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줄기에까지 머물게 한다. - P.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