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피어 '미야베 월드 2막'의 신작 <맏물 이야기>는 제목을 듣는 순간 '맏물'이라는 낯선 단어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맏물'은 순우리말로 푸성귀나 해산물, 또는 곡식이나 과일 등에서 그해에 맨 먼저 거두어들이거나 생산된 것을 뜻한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단어지만 원제 <初ものがたり>와 절묘하게 어우러지기에 제목 한 번 참 잘 붙였다 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에 나는 식자재와 어우러진 기이한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주객이 전도되어 이야기보단 음식에 더 침을 흘리게 되는 순간도 있지만 그런 우리를 잘 도닥여 이야기의 끝까지 인도하는 미미여사의 글솜씨는 이번에도 감탄스럽다. 본문엔 아홉 가지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각 이야기에 대한 감상보다는 새롭게 등장해 눈길을 끌었던 두 사람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려 한다.

첫 번째 인물은 모시치 대장에게 영감 스님이라 불리는 꼬마 점쟁이 니치도다. 세간에선 니치도님이라 불리우는 조스케는 뛰어난 신통력을 이용해 곤란에 빠진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유명해졌다. 하지만 조스케는 이제 겨우 열 살 먹은 어린아이이기도 하다. 모시치 대장은 처음엔 니치도님이라 불리며 떠받들어지는 조스케를 못마땅해 한다. 본래 하던 사업이 있었음에도 니치도 쪽의 일이 더 돈이 된다 싶으니 니치도에게만 매달려 있는 부모의 존재도 그렇고,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답지 않은 생활을 해야 하는 점도 마음에 걸렸으리라. 능력의 진위보단 열 살짜리 어린아이에 대한 걱정이 먼저였기에 곱게 볼 수 없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처음엔 부모가 어린아이를 앞세워 사기를 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계속 읽다 보니 그건 아닌 듯하여 안도하기도 했다. 니치도와 모시치 대장은 처음엔 좀 삐걱거렸지만, 후엔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은 이해하게 된 듯 싶다.

두 번째 인물은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유부초밥 노점 주인이다. 유부초밥 노점은 도미오카바시 다리 부근에서 점심쯤부터 새벽 두 시경까지 문을 여는데 그 주인이란 중년 남성이 상당히 수상하다. 부근의 상점이나 노점의 자릿세를 관리하는 불량배들이 이 유부초밥 노점만은 건들지 않는 것도 수상하고 도저히 요리하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겉모습 또한 그러하다. 이를 이상히 여긴 오캇피키 모시치는 유부초밥 노점을 수시로 드나들며 주인의 동태를 살피게 된다. 처음엔 감시의 목적이 컸지만 맛있는 제철 음식에 술 한잔을 곁들이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것들이 있어 나중엔 사건이 안 풀릴 때마다 들르게 된다. 정말 은퇴한 무사 인지,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인지, 불량배 두목인 가쓰조와는 어떤 인연이 있는 것인지 뭐 하나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한 채 소설이 끝나게 되어 아쉬움이 크다. 미미여사가 이 시리즈를 쓴지가 워낙 오래전이라 그의 정체를 알게 되는 날이 올는지는 알 수 없다.

북스피어의 지난 10여 년간의 노력이 드디어 빛을 보는 것인지 <맏물 이야기>가 여기저기 상당히 반응이 좋은 모양이다. 얼마 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도 소개가 될 정도였다니 꾸준히 미야베 월드 2막 시리즈를 사서 읽어온 독자로서 매우 기쁜 일이다.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를 알 게 된 건 <모방범>, <화차>, <이유> 같은 사회파 추리 소설로 불리는 현대물이었지만, 내게 미야베 미유키가 특별해진 건 에도 시대물 때문이었다. 미야베 월드 2막은 이야기의 배경도 인물도 단어 자체도 생소하고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소설이다보니 살인이 단골 소재로 등장하고, 어쩔 땐 살인보다 더 마음 아픈 이야기를 접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이유는 이야기의 바탕에 깔린 따뜻한 사랑과 인정에 있다. 악()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결국엔 선()으로 끝나는 이야기들은 읽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한동안 '힐링'이라는 단어 자체가 붐을 일으켰었는데 미미여사의 에도 시대물은 '힐링 소설'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이토키치는 콧등에 눈을 붙인 채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많이 오네요. 이런 봄눈이 전부 강으로 떨어지고, 바다로 흘러가서 하룻밤이 지나면 뱅어가 되는 겁니다, 대장님." 모시치는 호오, 하고 말했다. "너치고는 세련된 문구를 생각해냈구나." 그러고 보니 이토키치는 뱅어를 먹지 않는다. 모시치도 모시치의 아내도, 또 한 명의 부하인 곤조도 살아서 팔딱팔딱 뛰는 갓 잡힌 뱅어에 초장을 뿌려서 꿀꺽 삼키다시피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토키치만은 달랐다. "왜 그러느냐? 그런 세련된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뱅어를 먹지 못하는 게냐?" 모시치의 물음에 이토키치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다만, 그 작고 새까만 눈을 보면 먹을 수 없게 되는 것뿐입니다." 그놈들은 점 같은 눈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 눈으로 초간장 속에서 이쪽을 올려다보면 젓가락을 댈 수가 없게 되고 말아요." 모시치는 웃었다. "의외로 담이 작은 녀석이로군. 그건 살아 있는 생선을 먹는 게 아니다. 봄을 삼키는 것이지." "흔히들 그렇게 말하지요. 하지만 저는 안 돼요. 아무래도 안 되더라고요." - P.6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