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일기 - 지허 스님

2015. 2. 12. 16:38



이 책은 1973년 월간 <신동아>에 연재되었던 23편의 에피소드를 묶은 단행본이다. 현재 판매 중인 단행본은 2010년 출간 본이고 1993년과 2000년에도 단행본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고 한다. 글을 쓴 지허(知虛) 스님에 대해선 여러 추측만이 있을 뿐 신원이나 배경에 대해서 지금까지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글 속에 나타나는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세속에서의 배움과 번민이 깊었을 거라 짐작할 뿐이다.

스님들에겐 일정 기간 동안 일정 장소에 머물며 수행하는 안거(安居) 기간이 있다.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라 하고, 음력 10월 15일부터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 한다. 이 기간동안 수행자들은 한 장소에 머물며 수도에 매진한다. <선방일기>는 지허 스님이 오대산 상원사 선방에서 3개월간의 동안거를 보내며 써내려 간 일기다.

결제(結制)를 앞두고 스님들은 각자 역할을 분담하여 김장, 메주 쑤기, 땔감 장만 등으로 채비를 단단히 한다. 해제(解制)가 되기 전까지는 선방을 떠날 수 없고, 하안거에 비해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동안거 기간엔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법정 스님의 글을 즐겨 읽은 덕분인지 안거, 결제, 해제, 울력 같은 단어가 낯설지 않았다. 스님들이 안거 기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안거 기간 동안의 시간표를 살펴보자면 새벽 2시 30분 기상, 참선과 공양의 반복, 저녁 9시 취침이다. 마치 수험생 같은 시간표를 평생 따라야 한다니 수행자의 삶도 결코 쉬운 길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불교 수행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불(成佛)이다. 목표는 같지만, 그곳으로 향하는 방법은 서로 다르다. 어떤 이는 생식을 하고, 어떤 이는 절대 눕지 않는 장좌불와를 실천하고, 어떤 이는 입을 닫은 채 묵언정진을 한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몸과 마음을 다잡고 수행 길에 오르지만, 중도에 낙오하는 이도 있고 결핵 때문에 불가피하게 선방을 떠나야 하는 이도 있었다. 추운 산길을 아픈 몸을 이끌고 내려가야 하는 것도 안타까웠지만 가진 것 없는 수행자가 무엇으로 치료를 받고 어디서 지친 몸을 뉘일지 그게 더 걱정스러웠다. 이 당시만 해도 스님들을 위한 병원이 없어서 몸이 아프면 치료받기가 어려웠다는데 지금은 사정이 나아졌을지 모르겠다.

백 장 남짓 가볍고 얇은 책이지만 안에 담긴 수행자들의 일상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불교 관련 글을 읽을 때마다 더 하고 채우는 것에만 급급해 하지 말고 나누고 비우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문제는 생각에서만 그친다는 것이다. 나는 두루 많은 것을 탐하진 않으나 좁고 깊게 집착하는 성질이어서 좀처럼 비워지지 않음이 문제다. 지금 이 시각에도 용맹정진하고 있을 많은 수행자의 성불을 빌어본다.


불경(佛經)은 가르치고 있다.『사랑하는 사람을 갖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도 갖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자주 만나 괴롭다.』애증(愛憎)을 떠나 단무심(但無心)으로 살아가라는 교훈(敎訓)이다. - P.53~54

그러나 세모는 나에게 알려 온다. 이제 한 해의 시간은 다 가고 제야가 가까웠음을. 그러면서 타이른다. 한 해의 것은 한 해의 것으로 돌려주라고. 그러면서 마지막 달력장을 미련 없이 뜯어버리고 새 달력장을 거는 용기를 가지라고. 인간이란 과거의 사실만을 위해 서있는 망두석(望頭石)이 아니라 내일을 살려고 어제의 짐을 내려놓으려는 자세가 있기에 비로소 인간이라고. - P.93

"어려운 일이지요. 평범한 인간들은 시간을 많이 먹을수록 그것으로 인해 점점 빈곤해지고 분발 없는 스님들은 절밥을 많이 먹을수록 그것으로 인해 점점 나태와 위선을 쌓아가게 마련이지요. 나아가지 못할 바에야 제자리걸음이라도 해야 할 텐데." - P.97~98

"전지전능하다는 신을 동경하고 메시아 재림의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그런 시일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면 인간은 자유 없는 꼭두각시에 불과합니다. 절대자의 괴뢰(傀儡), 신의 노예, 그러한 천국이 있다면 나는 차라리 고통스러워도 자유로운 지옥을 택하겠습니다. 그러한 극락이 있다면 나는 차라리 도망쳐 나와 끝없는 업고의 길을 배회하렵니다." - P.110~111

불교의 중도는 역의 태극이나 자사의 중용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에도 상통한다. 상극의 초극이야말로 진실로 인간의 가장 긴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비로소 인간의 순화, 지상의 정화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개인의 마음에 달려 있을 뿐이다. 개인의 순정한 마음 없이 사회의 복지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 P.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