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시대의 막을 열고 약 60여 년이 지난 시점, 주인공 시부카와 하루미는 에도 성의 바둑 기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에도 성에서 바둑 기예를 선보일 수 있는 4개의 바둑 명가 중 야스이가의 장자로 태어났다. 하루미는 가업을 이어 바둑 기사로서의 삶을 살고 있지만 마음속으론 산술(算術)과 하늘의 별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었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갈등하던 하루미에게 산술 천재 세키 다카카즈와 아이즈 영주인 호시나 마사유키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 전체를 바꿀만한 계기가 된다.

무엇이든 처음은 어렵다.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대체하는 일은 더욱더 어렵다. 소설은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일본 고유의 역법을 완성하여 채택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자체적인 역법을 만들기 위해선 천문학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필요했고 당시 과학 기술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소설 속 시부카와 하루미가 아닌 역사 속 시부카와 하루미는 1684년 일본 실정에 맞춘 최초의 역법 '정향력(貞享曆)'을 개발한다. 이는 1442년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과 만든 조선 최초의 역법 '칠정산(七政算)' 보다 242년이 늦은 결과다. 실제로 시부카와 하루미가 제작한 천문지도 역시 조선의 천문지식을 참고한 것이라고 하니 세종 시대의 과학 기술은 지금 살펴봐도 놀라울 뿐이다. 일본 최초의 달력 만들기 수기를 읽었는데 결과적으론 세종대왕에 대한 존경심과 자부심만 더 높아졌다. 일본, 너희가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 만든 거 우린 242년 전에 이미 다 만들었거든? 어깨 으쓱~ 이런 느낌이다.

다시 소설 속으로 돌아가서, 먹을거리가 연상되는 이름을 가진 낯선 작가가 들려주는 달력 만드는 이야기는 평소 접하지 못한 참신한 소재여서 흥미로웠다. 본문은 총 6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루미가 호시나 마사유키의 명을 받아 다케베 마사아키와 이토 시게타카를 필두로 함께 떠난 3장 북극출지(北極出地)의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출발 당시엔 죽음까지 생각했을 정도로 한껏 기가 죽어 의욕이 없던 하루미가 일본 전역을 다니며 관측을 하는 동안 점점 생기를 되찾고 자신감을 얻는 모습이 흐뭇했다. 내용과는 별개로 하루미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이토나 다케베가 그를 동등한 학자로 대접하며 따스한 마음으로 대해주는 것이 정말 보기 좋았다. 일본 최초의 달력을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시부카와 하루미라는 청년의 성장 일기이기도 해서 좌절을 거듭하며 한 뼘씩 성장하는 주인공을 지켜보는 것 또한 즐거웠다.  

내 경우엔 일본 사극을 종종 접해서 괜찮았지만 일본 시대 소설을 처음 읽는 독자에겐 각종 명칭이 다소 헷갈릴 듯싶다. 당시의 역법은 국가의 중대사안이었던 만큼 (미미여사의 에도 소설은 애교로 느껴질 정도로) 딱딱한 명칭이 많이 등장한다. 물론, 명칭을 대충만 알고 넘어가도 내용 파악에 문제는 없다. 작가 우부카타 도우도 주인공 하루미처럼 재능이 넘치던데 앞으로 북스피어를 통해 그의 글을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제 천측에서도 보았던 하늘이고 이 세상에 태어나 몇 번 보았는지 알 수 없는 하늘이다. 그런데 지금, 밤하늘의 광활함, 별들의 아름다움에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이런 것을 매일 밤 볼 수 있는데 왜 세상에는 고뇌라는 것이 있을까. 그리 생각하니 몹시 의아해지는 동시에 딸깍, 딸깍, 하고 작은 나무판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뇌리에서 들렸다. 나무판은 에마였다. 곤노하치만구 신사에서 본 산액 에마들이다. '세키'란 이름을 처음 보았을 때의 감동이 전에 없이 또렷하게 살아났다. '나 같은 사람도, 괜찮습니까?' 세키에게 문제를 내기로 결심한 그날 밤, 고본을 향해 던진 물음이 다시 가슴에 뜨겁게 솟구쳤다. 북극성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말 그대로 천원인 저 별의 가호가 있는 거라 믿고 싶었다. 저 별의 가호는 언제나, 누구한테나 있는 거라 믿고 싶었다. 다만 눈길을 하늘로 향하기만 하면. "나 같은 사람도……." 가만히 숨을 토하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별은 대답하지 않는다. 결코 거부하지 않는다. 그것은 천지의 한처음부터 우주에 존재하며 누군가 해명해 주기만을 기다려 온 하늘의 뜻이라는 이름의 문제였다. - P.226~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