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복잡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콜롬비아 작가로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마술적 사실주의, 환상적 사실주의 경향을 주도해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진 도대체 마술적, 환상적 사실주의가 무엇인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는데 읽고 나니 두루뭉술하지만 조금은 알 듯하다. <백년 동안의 고독>은 1962년에 출간된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5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과 마콘도 마을의 흥망성쇠를 담고 있다.

문장도 막힘없이 읽히고 전쟁 부분의 지루함만 빼면 전체적으로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화자는 부엔디아 가문이 새로운 땅에 마콘도 마을을 세우고 5대까지 어떤 삶을 사는지 시간을 역행하며 쫓는다. 현실과 환상을 교묘하게 넘나드는 표현력에 감탄하고, 잘 짜인 이야기 틀에 감탄하고, 실존인물이었던 것처럼 꼼꼼한 인물 설정에 감탄하며 읽었다. 부엔디아 가문은 작명엔 취미가 없는지 대를 거쳐 같은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누가 누군지 헷갈리기도 했지만 내용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어서 무시하고 읽었다. 한 번 더 읽으면 와 닿는 것들이 더 있을 것 같은데 중간에 전쟁 이야기가 어찌나 지루한지 참고 볼 자신이 없다.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이자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그리고 우리의 삶 그 자체였던 소설. 중남미 문학이란 건 여전히 낯설지만, 그 독특한 매력에 발을 들였으니 앞으로도 계속 읽게 될 것 같다.

고전이 괜히 고전이라 불리는 게 아니라는 걸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깨닫게 된다. 정말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안 맞는 작품도 간혹 만나지만, 대부분은 읽고 나면 무언가가 남는다. 물론 현대문학에서도 남는 것은 있지만 고전의 그것과는 깊이가 다르다. 그것이 가슴에 콱 박히는 한 줄의 문장일 수도 있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교훈일 수도 있고, 나는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들을 오래전에 깨닫고 글로 남긴 사람들에 대한 경외와 존경일 수도 있다. 과거 많은 사람이 읽었고 지금 많은 사람이 읽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증명되는 고전. 도서정가제 전에 고전을 많이 사뒀는데 정말 잘한 일이지 싶다.


"이럴 줄 모르셨나요?" 그가 태연히 중얼거렸다. "세월은 흐르게 마련입니다." "그렇긴 하지." 우르슬라가 대꾸 했다. "하지만 별로 흐르지도 않아." 이 말을 했을 때 우르슬라는 자기가 옛날 죽음의 골방에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했던 대답을 그대로 되풀이했음을 깨닫고는, 지금 자기가 말했듯이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있다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 P.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