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편의 이야기가 묶인 소설집이다. 첫 번째 이야기 '퀴르발 남작의 성'부터 이 책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좋은 의미의 물음표였다. 저마다 다른 시간과 공간에 속한 화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설이자 영화인 퀴르발 남작의 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한국의 대학강사는 강의로, 미국의 출판사 편집장은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로, 일본의 영화감독은 인터뷰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는 다각도의 시선이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이미 완성된 코난 도일의 셜롬 홈즈에 새살을 붙여 써내려 간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은 원작의 독자라면 궁금증이 생길만한 글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좋아하는 무언가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기분 좋았다.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단편들 속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그림자 박제'였다. 이 단편에선 아들의 유학을 위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기러기 아빠가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기까지의 과정을 본인의 독백으로 들려주고 있다. 영화 <아이덴티티>에서 처음 알게 된 다중인격은 이젠 흔한 소재이지만 접할 때마다 흥미롭다. 불우한 어린 시절의 자신, 답답한 현실의 자신, 그런 자신에게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 내지만 결국 그 또한 자신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글을 읽으면서도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도 과연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축복인지 아닌지 의문스러워 질 때가 많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색색깔의 얌체공, 그 얌체공 떠오르는 소설집이었다. 하나하나 어디로 튈지 방향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기발하고 신선하다. 오래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고 받았던 충격과 어딘가 닮은 점이 있다. 알록달록한 작은 공을 잡으려고 동분서주 뛰어다니다 보니 이미 이야기는 끝나있었다는 뻔한 표현밖에 못 하는 독자라서 미안해질 뿐이다. 비슷비슷하고 틀에 박힌 글에 질렸을 때 읽으면 기분 전환이 될만한 책이다.


별자리는 우리의 운명을 만드는 게 아니다. 우리가 나아갈 길을 밝혀줄 뿐. 만일 우리가 현실에 안주하여 인간들이 기형적으로 만들어낸 마녀 상에 맞춰 살아간다면, 그건 대단히 위험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광기는 언제든지 또 폭발할 수 있다. 중세 말의 그때처럼 명분도 없는 전쟁이 빈발할 때, 원인 모를 질병과 자연재해가 덮칠 때, 사회가 불안하고 시기와 차별이 만연할 때, 그들은 또다시 희생양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처음보다 두 번째가 쉬운 법. 제2의 마녀사냥이 시작된다면, 이번 사냥감은 그들이 길들여놓은 진짜 마녀, 바로 우리가 될 것이다. - P.193~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