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에스콰이어>, <뉴욕타임스> 등의 잡지나 신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스크랩하고 그에 대해 쓴 짤막한 글을 묶어놓은 책이다. 전에 읽었던 수필집에서 하루키가 수필 쓰는 걸 어려워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읽으면서도 아니, 이렇게 편하고 재밌는 글을 잘만 썼으면서 어렵다니 좀 의외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하루키에게 잡지사가 제공하는 다양한 기사 중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놈으로 골라 글을 쓰는 건 쉽고도 즐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연재가 길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말고.

다양한 잡지와 다양한 기사가 낳은 다양한 스크랩 에피소드를 살펴보자면 작가나 영화, 음악, 여러 분야의 유명인, 심지어는 성병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헤르페스에 대한 여러 가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스크랩 에피소드 뒤에는 83년 4월 문을 연 도쿄 디즈니랜드에 대한 소개 글과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기간에 써내려간 수필도 있다. 하루키도 책 첫머리에 밝혔듯이 이 책에 실린 글 대부분은 어찌 됐든 아무 상관 없는 사소한 것들이다. 자투리 시간에 한두 꼭지씩 가볍게 읽기 딱 좋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고 90년대부터 제대로 된 추억이 시작되는 내가 80년대 미국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적었다. 공감할 수 없으니 작가의 글에 맞장구칠 수도 없어서 읽는 재미가 덜 했던 책이다. 빌려 읽었어도 충분했을텐데 왜 사서 읽었는지 모르겠다. 하루키 수필은 특별한 주제를 다룬것 보단 신변잡기, 일상다반을 써내려간 것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다음번엔 그런 수필로 만났으면 좋겠다.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우산 가게는 스웨인 아데니 브리그&선스로, 이 가게는 왕실에도 조달한다. 불과 최근까지만 해도 최대한 단단하게 감긴 우산이야말로 신사의 긍지라고 믿는 적잖은 수의 영국인들이, 우산을 빨고 다림질하고 단단하게 말기 위해 매일 아침 10시가 되면 우산을 들고 브리그 문을 두드렸다. 브리그 우산은 절대로 디자인을 바꾸지 않는다. 수북하게 밥을 담은 밥공기 같은 모양으로 둘이 같이 쓰기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혼자 쓰면 비에 잘 젖지 않는다. 한 개의 우산을 만드는 데 브리그에서는 여덟 명에서 열 명의 직인이 세 시간을 들인다. 가장 싼 나일론 모델이 약 15,000엔이라고 하니 그 정도라면 우리도 살 수는 있을 것 같다. 최고급품은 14만엔 정도. - P.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