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여사의 에도시대물이 돌아왔다. 우키요에를 소재로 한 책표지는 그 아름다움이 절정에 다다른듯하다. 이번 신간은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 3탄이다. 미시마야를 찾는 손님은 흑백의 방에서 단 한 명의 청자를 앞에 두고 마음에 묻어둔 기이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화자는 말하고 버린다. 청자는 듣고 버린다. 그것만이 규칙이다.

미시마야 시리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오치카'는 흑백의 방에서 여러 사람의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상처를 보듬고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있다. 미미여사의 말씀으론 오치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까지 쓰신다고 하셨는데 아직은 이야기 전개가 미진하다. 어떻게 연애라도 해야 뭔가 진행이 될 텐데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닌가 보다. 어서 빨리 습자소 선생과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고 싶은데 말이다. 괜스레 지켜보는 내 마음이 더 급하다.

두툼한 책을 펼치면 표제로 쓰인 '피리술사'를 비롯하여 총 여섯 편의 괴담이 실려 있다. 이번에 읽은 괴담 중에서 가장 섬뜩했던 건 '우는 아기'였고, '피리술사'는 표제로 쓰여서 조금 기대감이 있었는데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기치장치 저택'은 가슴 한쪽이 흐뭇해지는 이야기였고, 쉬어가는 이야기 격인 '가랑비 날리는 날의 괴담 모임'에선 다정한 돌부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였던 '절기 얼굴'은 기묘하고 흥미로워서 이번 괴담 중에선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절기 얼굴에선 <흑백>에 등장했던 인물이 재등장하는데 이 수수께끼의 인물과 오치카와의 대면이 벌써부터 기대되고 있다.

미시마야의 괴담들을 읽다 보면 '무서움'보단 '안타까움'이 먼저 밀려오는 경우가 많다. 어느 괴담에서나 사람이 있고 온정이 있다. 그래서 괴담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읽을 때도 즐겁고, 읽고 나서도 마음이 따듯해진다. 페르시아의 왕 샤리아르가 세헤라자드가 들려주는 끝없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듯이 미시마야의 괴담도 계속해서 읽고 싶어진다. 하지만 출판사가 신간을 출간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 독자의 운명이니, 출판사가 번창하도록 북스피어의 책을 열심히 사야겠다.


오치카는 차분하게 가슴속에 괴담을 담아 나갔다. 괴이한 일을 말하는 것은 세상의 어둠을 말하는 것이다. 괴이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이야기를 통하여 이 세상의 어둠을 접하는 것이다. 어둠속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 알 수 없음까지 함께 귀로 듣고 가슴에 담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청자 노릇을 감달할 수 없다. 화자는 말하고 버리고, 청자는 듣고 버린다. 이 규칙을 액면 그대로 실행할 수 있을 때까지 오치카는 청자로서 수련을 쌓아 나갈 작정이었다. - P.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