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시리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주제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범죄의 고발이다. 스티그 라르손은 15살에 윤간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는 당시 피해 여성을 도와주지 못한 자신을 내내 용서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윤간 사건과 이후 두 건의 여성 살인 사건은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되고 윤간 사건의 피해 여성 이름이었던 '리스베트'를 주인공으로 한 밀레니엄 시리즈를 씀으로써 여성폭력에 대한 분노를 터트리게 된다. 위키백과에 실린 글에 의하면 밀레니엄 시리즈는 스티그 라르손의 '병든 영혼을 치료하기 위한 테라피'였다고 한다. 그의 분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문구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3부에서는 '모든 악'의 정체를 밝히고 그들을 심판한다. 3부의 하이라이트는 과거 리스베트를 정신병원에 감금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정신과 의사 페테르 텔레보리안을 리스베트의 변호인 안니카 잔니니가 증인 신문하는 장면이다. 안니카 잔니니는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의 여동생으로 여성인권전문 변호사이다. 처음 미카엘에게 리스베트 변호를 부탁 받은 잔니니는 인권 변호사인 자신이 왜 이 사건에 필요한 것인지 의아했지만 리스베트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리스베트 살란데르라는 여성이야말로 개인의 자유는 물론 인권까지 철저히 유린당한 피해자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미카엘의 말대로 안니카 잔니니는 리스베트에게 딱 맞는 변호인이었다.

덕망 있고 실력 있는 정신과 의사를 연기하고 있는 페테르 텔레보리안의 가면을 벗기는 법정 증인신문 장면은 그동안 쌓인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 들 만큼 시원하고 통쾌했다. 안니카 잔니니가 페테르 텔레보리안이 헛소리를 뱉을 때마다 그 말을 뒤집을만한 명확한 증거를 내세우며 조목조목 따지는데 이렇게 시원할 데가! 페테르 텔레보리안의 썩어가는 표정이 생생하게 그려져서 더욱 즐거웠던 장면이다. 리스베트가 당한 것에 비하면 어림도 없지만, 그의 뻔뻔한 가면을 벗기고 추악한 본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여전히 사람과 어울리는 것에 서툴지만 1부에서 만난 리스베트와 3부 마지막 즈음의 리스베트는 분명 달랐다. 후견인이었던 홀예르 팔름그렌을 시작으로 밀턴 시큐리티의 드라간 아르만스키, 빼먹으면 서러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그리고 안니카 잔니니까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서 리스베트의 얼음장 같은 마음에도 분명 온기가 흐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과거의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이제 죽었고 새로운 리스베트 살란데르로 살아갈 그녀에게 응원을 보내주고 싶다. 부디, 미카엘과도 잘 지내길 바란다.


올해 내내 그는 진정으로 그녀의 친구였다. 그녀는 그를 신뢰하고 있었다. 어쩌면 말이다. 그런데 자신이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자신이 항상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써야 하는 남자라는 것은 무언가 성가신 일이었다. 그녀는 불쑥 결심했다. 그가 존재하지 않는 듯이 행동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를 보아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그녀는 문을 활짝 열어, 그를 다시 한 번 자신의 삶 가운데 받아들였다. - P.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