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추위와 차분하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생선'의 성장기를 읽는 듯한 에세이었다. 생선(저자)이 여행한 나라는 스칸디나비아반도 서쪽 북대서양에 위치한 섬나라 아이슬란드. 내가 그토록 가보고 싶어하는 북유럽 국가들과 이웃한 나라다. 아이슬란드에서 180일 동안 머물며 만난 사람들에 대한, 자신에 대한, 여행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펼쳐놓는다. 읽는 나 역시 차분한 마음으로 한글자 한글자 생선의 흔적을 뒤따른다.

여행을 많이 하게 되면 낯선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요령이 생기는 걸까. 절실하지 않으면 먼저 다가가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가능한 일일지 여행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궁금해지곤 한다. 지구 저편, 눈과 얼음의 나라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가 좋았다. 생각해보니 내 얘기는 하기 싫어하면서 남 얘기 듣는 건 이렇게나 좋아하다니 나도 좀 이기적이다. 변명을 하나 붙이자면 어떤 식으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입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물론 할 말이 없을 때도 많다. 조물주는 내게 읽고 쓰는 능력만 줬지 말하는 능력은 주지 않으신 게 분명하다.

책 읽다가 생선이 부러워지는 순간이 두 번 있었는데 첫 번째는 까만 밤하늘을 수놓은 오로라였고, 두 번째는 침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던 비사투파에서의 12일이었다. 도시에선 밤하늘 별도 보기가 어려운데 오로라라니! 실제 내 눈앞에서 오로라를 보게 된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완벽한 어둠과 완벽한 침묵이 함께하는 비사투파에서의 생활도 정말이지 부러웠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인위적인 빛 때문에 밤이 돼도 어둡지 않고, 어둡지 않으니 밤낮없이 시끄럽다. 빛과 소음에 민감한 나는 이사 온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푹 잠들지 못한다. 비사투파의 겨울밤, 따뜻한 방안에서 이불 둘둘 말고 가사 없는 클래식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책 읽으며 귤을 까먹을 수 있다면! 상상만 해도 황홀하다. 비록, 현실은 웃풍 몰아치는 내 방 침대에서 전기장판 틀어놓고 책 읽으며 귤 까먹는 것이겠지만 이것 또한 행복한 일이다.

내 취향의 여행에세이는 아니었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아이슬란드'가 무척 매력적이었다. 요즘 나의 독서 패턴은 소설 - 여행에세이 - 소설 - 여행에세이의 반복이다. 가장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고 머리가 복잡해지는 소설을 연달아 읽게돼서 중간중간 쉼터처럼 여행에세이를 끼워 넣고 있다. 좋아하는 여행작가들의 신간 소식이 없어서 조금 슬프다.


"젊음이 뭔지 아나? 젊음은 불안이야. 막 병에서 따라낸 붉고 찬란한 와인처럼, 그러니까 언제 어떻게 넘쳐 흘러버릴지 모르는 와인 잔에 가득 찬 와인처럼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또 한편으론 불안한 거야. 하지만 젊음은 용기라네. 그리고 낭비이지. 비행기가 멀리 가기 위해서는 많은 기름을 소비해야 하네. 바로 그것처럼 멀리 보기 위해서는 가진 걸 끊임없이 소비해야 하고 대가가 필요한 거지. 자네 같은 젊은이들한테 필요한 건 불안이라는 연료라네." - P.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