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약탈해 간 외규장각 의궤반환을 소재로 삼은 소설이다. 외규장각 의궤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하고 한국으로 반환될 수 있도록 우리 정부에 소개한 고 박병선 박사, 의궤 반환협상이 고인 물처럼 정체된 시점에 주프랑스대사로 부임하여 반환협상에 힘쓴 박흥신 주프랑스 대사, 미테랑 대통령의 명령에 불복해가면서까지 의궤 반환을 막고자 했던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무장 마담 상송. 각자의 신념을 지키고자 맹렬히 움직였던 그들이 소설 속에서 다른 이름과 다른 옷을 입고 되살아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지하 별고에서 발견한 한 권의 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살인과 음모를 추적하는 것이 주 내용인데 시작은 좋았으나 읽는 내내 무언가 목에 걸린 듯한 느낌이다. 내가 역사나 문화재를 다루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지 '전설의 책'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그렇게까지 반대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신들 나라보다 좀 더 이른 시기에, 좀 더 훌륭한 문화를 이룩한 것이 그 이유라면 이유일 텐데 국수주의에 빠진 강대국이 저항 의지조차 없는 약소국을 괴롭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문화재 자체는 지키고 보존해야 함이 마땅하지만, 그것이 자신들 나라의 것보다 훌륭하다고 해서 약탈하고 훼손하고 폄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앞서 말한 건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일 뿐이고 현실에선 국가 대 국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렵고 복잡하기만 하다.

소설 자체도 괜찮았지만, 부수적으로 관련 역사 공부를 하게 돼서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문화재를 약탈해가는 그들도 나쁘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문화재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우리 자신도 그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 새로운 것도 좋고 발전하는 것도 좋지만 그 모든 것은 우리의 과거, 역사의 바탕 위에 세워져야 한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잊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했다.

2011년 5년 갱신 대여라는 조건을 달고 고국으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돌아오던 그 해 전시 이후론 공개하지 않고 웹상으로만 DB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관람객들이 찍은 사진만 봐도 어쩜 그리 색이 선명하게 살아있고 정교하고 아름다운지 감탄스럽기만 하다. 다시 한 번 일반에 공개될 날이 온다면 꼭 직접 가서 보고 싶다. 우선은 아쉬움을 달랠 겸 작년 KBS에서 방송한 <의궤, 8일간의 축제>를 봐야겠다.


"어디 그 책뿐이겠는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이 이들 문화재를 안전하게 관리해주지 않았다면 과연 이 인류의 유산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세계 어디에도 우리 프랑스만큼 인류의 유산을 아끼고 보호하는 나라는 없어. 당신들은 이런 유산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이전에 얼마나 이를 잘 보호하고 관리했는지 먼저 반성부터 해야 해. 지난해만 해도 불타 없어지거나 전쟁 통에 사라진 문화재가 얼마나 많은가. 한 번 잿더미로 변한 문화재는 다시 복원할 수 없어. 그것은 인류에게는 크나큰 손실이며 재앙인 것이지." - P.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