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의 풍경 - 고종석

2014. 4. 19. 21:59



아무런 의식 없이 매일, 매시간 입 밖으로 내뱉는 우리 말 '한국어'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익숙한 만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었던 모국어 '한국어'의 풍경을 잠시나마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우리 말을 표현하는 문자인 '한글'도 좋지만 다채로운 만큼 아름답고 그만큼 복잡한 언어인 '한국어' 또한 좋다. 한국어는 알수록 어렵지만 아름다운 언어다.

많은 사람이 문자인 '한글'과 언어인 '한국어'의 개념을 혼동하곤 하는데 『'한글소설'이라는 허깨비』에서 이 부분에 대해 시원하게 짚어주고 있다. 읽으면서 손이 닿지 않는 등을 시원하게 긁은 기분까지 들었다. 두루뭉술한 무언가를 싹싹 긁어모아 차례차례 정리해서 누구나 쉽게 보고 들을 수 있도록 글이나 말로 쫙 펼쳐놓는 능력은 내가 정말 부러워하는 재능중의 하나다. 뛰어난 언변과 글솜씨는 내게 주어진 재능이 아니니 욕심내지 않지만 적어도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비록 이 글도 곁길로 빠져버렸지만.

본문은 3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인 『말들의 풍경』에선 새롭게 알게 된 점이나 그동안 잘못 알고 있던 점을 바로잡을 수 있었고 우리 말을 전문가의 시점에서 찬찬히 뜯어 볼 수 있어서 유익했다. 반면 나머지 『말들의 산책』이나 『말들의 모험』은 솔직히 흥미가 많이 떨어져서 읽기가 어려웠다. 1부 내용이 더 추가되어 개정증보판이 나왔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내겐 전체적으로 어려운 책이었지만 우리 말에 대한 사랑이 담뿍 담겨있는 글을 읽는 시간은 행복했다.


훈민정음 연구로 학위를 받은 미국인 동아시아학자 게리야드는 제 학위 논문에 이렇게 썼다. "글자 꼴에 그 기능을 관련시킨다는 착상과 그 착상을 실현한 방식에 정녕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오래고 다양한 문자사이에서 그 같은 일은 있어본 적이 없다. 소리 종류에 맞춰 글자 꼴을 체계화한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다. 그런데 그 글자꼴 자체가 그 소리와 관련된 조음 기관을 본뜬 것이라니. 이것은 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다." - P.129

공적 담론의 마당에서까지 오늘날의 한국어가 으르렁말과 가르랑말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정서적으로 뜨겁다는 뜻일 테다. 말하자면 열정적이라는 뜻일 테다. 역사가 가르치듯 열정은 모든 진보의 동력이지만, 파괴와 자기파괴를 부추기는 영혼의 병이기도 하다. - P.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