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넘치는 두더지, 영리하며 지혜로운 물쥐, 듬직한 숲의 조언자 오소리, 말썽꾸러기 두꺼비까지 숲 속 동물들의 우정과 모험이 넘치는 따스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동화책이다. 동물들의 모험담은 아무래도 내가 어린아이가 아니다 보니 재미있다기보단 귀엽고 흐뭇한 기분이 들었고 숲 속 풍경이나 자연을 묘사한 문장들은 아름다웠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이란 제목도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항상 말썽만 일으키는 두꺼비가 인상적이긴 하지만 약간은 철없는 두더지를 항상 이해하고 배려하는 물쥐가 제일 좋았다. 숲 속이라는 배경만 바꾸면 사람 사는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었던 이야기를 읽으며 지혜로운 물쥐가 되진 못해도 두꺼비처럼 살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 케네스 그레이엄은 시력이 약해 앞을 잘 보지 못하는 자기 아들을 위해 은행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짬짬이 시간을 내어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져서 마음이 따뜻해졌는데 그 아들이 스무 살 때 하늘로 갔다는 걸 알고 나니 마음 한편이 찡해진다.

우리나라에선 이상하게 어린아이가 주인공인 동화를 어린이 필독서나 권장 도서로 지정하곤 하는데 <어린 왕자>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비롯한 여러 동화는 어린이보단 어른을 위한 동화에 가깝다. 전자는 어릴 땐 이해하기 어렵고, 후자의 경우 읽다가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눈높이 교육이 필요하듯 그 나이에 맞는 눈높이 독서도 필요하지 않을까.

책 자체가 예뻐서 하나씩 사 모으고 있는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사진 찍으려고 책장을 뒤져서 한군데 모아봤는데 전부 열 권이다. 현재 열 아홉 권 나왔는데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열 여섯 번째 책이다. 가로 13cm, 세로 16cm 정도의 아담한 크기에 책에 실린 아름다운 일러스트는 모두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이다. 이 시리즈 말고도 동화책을 꽤 사뒀는데 읽기 시작하면 잘 읽으면서도 이상하게 손이 잘 안 간다.


문을 활짝 열자 겨울에 잘 어울리는 멋진 풍경이 나타났다. 희미한 등불이 비추는 앞마당에 여덟에서 열 마리 정도 되는 작은 들쥐들이 반원 모양으로 둥글게 서 있었다. 목에는 털실로 짠 빨간색 목도리를 두르고, 앞발은 주머니에 깊숙이 찔러 넣은 모습이었다. 추위를 물리치려는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반짝이는 구슬 같은 눈으로 서로 수줍게 쳐다보며 살짝 키득거리기도 하고 코를 킁킁대며 코트 소맷자락에 문지르기도 했다.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는 듯 등불을 든 나이 많은 들쥐가 “자! 하나, 둘, 셋!” 하고 외쳤다. 동시에 들쥐들의 가늘고 귀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P.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