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매킨토시가 사과 품종 이름이었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다. 내가 아는 사과 품종이라곤 다분히 한국적인 부사, 홍옥이 전부이니 사과 매킨토시(Mclntosh)와 컴퓨터 매킨토시(Macintosh)를 연결짓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상표권 때문에 철자는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둘은 같은 매킨토시라고 한다. 애플이 한층 더 귀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둘의 가격 차를 생각하니 전혀 귀엽지 않아졌지만.

하루키는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한다. 나 또한 사진 찍히는 건 싫다. 그가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는 이유는 사진만 찍으려고 하면 표정이 굳기 때문이라는데 내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나름 열심히 웃는다고 웃는데 사진 찍는 사람은 계속 웃으라고 요청한다. 이런 상황에 놓일 때마다 난감하다. 그리고 내 얼굴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서 사진으로 남기고 싶지도 않다. 외모 비하까진 아니고 그저 내 얼굴이 내가 좋아하지 않는 타입이랄까. 내 겉모습이나 남의 겉모습이나 무관심한 편이라 평소엔 별 신경 안 쓰고 살지만, 굳이 사진으로 찍어서 남기고 싶진 않다. 하루키의 경우엔 작은 동물이 곁에 있을 때 표정이 온화해진다는데 사진 찍을 때마다 작은 동물을 휴대할 수도 없는 일이고 어찌 됐든 난감한 일이다.

하루키가 비행기 안에서 항상 주문한다는 '블러디 메리'는 어떤 맛일까. 보드카와 토마토 주스를 넣은 칵테일이라는데 난 술도 싫어하고 시판 토마토 주스도 싫어하는데 확실히 내가 좋아할 만한 음료는 아닌 것 같지만 한 모금쯤 얻어 마셔 보고 싶긴 하다. 그냥 술 섞은 토마토 주스일 것 같긴한데 맛이 궁금해. 블러드 메리 이외에도 장어, 김밥, 도넛, 스시, 크로켓까지 다양한 음식 이야기가 나오는데 읽다 보면 배가 출출해진다. 장어 이야기를 해 보자면 내 경우엔 처음 접한 장어가 비린내 물씬 풍기는 저급한 수준의 요리였던지라 지금까지도 장어와는 친해지질 못하겠다. 장어뿐만 아니라 추어탕도 싫고 뱀도 싫고 (얘는 종류가 다르긴 하지만) 육해공 통틀어서 길죽하고 미끈거리는 친구들에겐 도저히 정이 안 간다.

하루키 에세이는 뭘 읽어도 언제 읽어도 좋지만, 유난히 전에 읽었던 책과 중복되는 내용이 많다. 글은 한정되어 있는데 여러 출판사에서 새롭게 책을 출간해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새로 나오는 에세이는 중고로 사는 편이다. 나중에 하루키 에세이를 모두 모아 전집으로 출간한다면 사고 싶은데 출판사가 다 달라서 가능할지 모르겠다.


문득 생각났는데 세상에는 종종 '후렴이 없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얼핏 옳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전개에 깊이가 없다고 할까, 미로 속으로 들어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할까……. 그런 사람과 만나 얘기를 나누면 여지없이 녹초가 되고 피로도 의외로 오래간다. - P.51

음악이란 참 좋다. 거기에는 항상 이치와 윤리를 초월한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에 얽힌 깊고 다정한 개인적인 정경이 있다. 이 세상에 음악이라는 것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요컨대 언제 백골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우리의 인생은) 더욱더 견디기 힘든 무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 P.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