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설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작가가 느끼게 되는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은 과연 얼마만큼일까. 그리고 그런 작가의 차기작에 대한 독자의 기대감은 과연 얼마만큼일까. 작가의 부담감과 독자의 기대감에 답을 내려줄 도나토 카리시의 신작이 나왔다. 이번 소설도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전작과 마찬가지로 선과 악, 그 모호한 경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야기는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 마르쿠스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 그리고 의문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여형사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세 명의 화자가 번갈아 각자의 이야기를 펼치며 각각의 이야기는 하나의 큰 흐름으로 이어진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재는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글 또한 짜임새 있고 전하고자 하는 바가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다. 전작에서도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뭔가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해지고 여운이 길게 남았었는데 이번 소설은 그만큼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마지막 끝맺음이 인상적이었다.

영혼의 심판을 내리는 바티칸 사면관과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 살아가는 카멜레온 연쇄 살인범의 조합이 어찌 흥미롭지 않을 수가 있으며 재미없을 수가 있을까. 요리도 재료보다 만드는 사람의 손맛이 더 중요하듯 글도 재료를 다듬고 새로운 살을 붙이고 독자가 맛있게 읽을 수 있게 하는 작가의 역량이 더 중요한데 그 점에 있어 도나토 카리시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작가로 보인다. 추리, 스릴러 장르를 무척 좋아하는 나로선 그 재능이 감탄스럽고 주제넘지만 부럽기까지 하다.

이 소설도 재미와 함께 독자에게 생각할 무언가를 던져주는 잘 쓰여진 소설이지만 <속삭이는 자>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느낀 전율 비슷한 감정과 여운을 느낄 순 없어 조금 아쉽긴 했다. 마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처럼 도나토 카리시에게도 <속삭이는 자>가 그런 소설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의 첫 소설은 지나치게 완벽했다. 그뿐이다.


"이 세상에는 빛의 세계가 어둠의 세계와 만나는 접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바로 모든 일들이 비롯됩니다.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어둠의 세계에서 튀어나오는 일들 말입니다. 우린 그 경계선을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간혹 그 경계를 뚫고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저희는 그 존재들을 다시 어둠의 세계로 돌려보내는 일을 합니다." - P.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