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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0. 30. 19:52

일주일 넘게 잔잔하게 나를 괴롭히던 감기는 주말에 푹 쉬었더니 떨어져 나갔다. 다른 땐 잘 모르겠더니 감기 걸리니까 코안 쪽이 건조해서 미치겠더라. 습도 조절용으로 구피 어항을 방에 들여놓을까도 했었는데 문제는 방이 좁아서 놓을 공간이 없다. 그러고 보니 요즘 구피 밥을 잘 안 준 거 같은데? 갈수록 구피의 존재를 잊어가고 있다. 미안하다. 구피들아. 오늘은 밥 많이 줄게. 사실 난 내 밥 챙겨 먹기도 귀찮은 인간이야.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들 하지만 실상은 책이 제일 안 팔리는 계절이라고 한다. 나도 이상하게 올가을엔 책이 안 읽힌다. 독후감도 밀렸는데 간단한 글도 안 써지고 원래도 별 생각 없는 귀차니스트였지만 나이 들수록 게으름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사람이 뭔가 생기가 있고 의욕이 있고 그래야 하는데 안도 겉도 바싹 말라 비틀어진 느낌이다. 간접경험으로 잠시 잠깐 촉촉해질 순 있어도 푹 젖어들 순 없는 일이니 다 겁많은 내 탓이다.

회사에서 거래처 상대하면서 느끼는 건 대기업이나 나라 녹 받아먹는 분들도 지랄 맞지만 그네들보다 어중간한 규모의 회사가 더 지랄 맞다는 거다. 우리 회사는 99% 을의 처지인지라 갑사에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이도 저도 아닌 회사에 이도 저도 아닌 담당자가 진상을 떨어대는 경우가 많아서 혈압이 머리끝까지 오르곤 한다. 그리고 회사란 곳엔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못하는 사람의 비율이 더 높다. 그 중에서도 일 못 하고 부지런한 상사와 거래처 담당은 정말 최악이다.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다니긴 하지만 우리나라 직장은 사람 성격 버리기 딱 좋은 곳이다. 한국 직장인들 진정 불쌍하다.

팬질 근황을 늘어놔 보자면 여전히 매즈 아저씨에게 빠져있는데 이 아저씬 연기할 때의 모습과 평상시 모습이 360도 달라서 알면 알수록 재밌다. 연기할 때는 엄청난 섹시남인데 평상시엔 가족, 축구와 맥주, 담배를 좋아하는 이웃집 아저씨. 그런 갭이 좋다. 단 하나 덴마크어를 못 알아듣는 관계로 팬질이 쉽지 않다는 게 불만스럽다. 우리나라에서 덴마크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영어도 못하는 내가 영자막으로 영상을 보게 되다니. 내가 만약 영어를 마스터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모두 매즈 미켈슨의 공이다. 애정만큼 언어 습득에 도움이 되는 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승달씨. 새 앨범이 나왔는데 생각만큼 큰 반향은 없지만 난 'Sorry' 하나만으로 대만족이다. 이번 콘서트는 'Sorry' 들으러 가는 거나 다름없다. 예매할땐 언제 11월 9일이 오나 했는데 오늘 티켓도 받았다. 하루하루는 느리게 가는데 한 달, 일 년은 참 빠르다. 자리가 뒷자리라 이번엔 얼굴 보는 건 포기했고 라이브나 실컷 듣고 와야겠다.

Whitechapel 시즌4를 시작으로 영드 수사물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이어서 본 Thorne도 재밌었고, 지금은 Dirk Gently 보고 있는데 소소한 재미가 있다. Broadchurch나 Wallander처럼 영드 특유의 우울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아직 이 두 드라마를 뛰어넘을 드라마는 찾지 못했다. 난 왜 이리 수사, 추리에 우울한 분위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저런 드라마를 본다고 우울해지고 그런 건 없긴 한데 오히려 후폭풍이 전혀 없으니 내가 어딘가 이상한 건가 싶기도 하다.

내한 때 모든 걸 보여주고 간 친절한 히들씨 때문에 '토르2'를 보고 싶은데 설탕 회사의 횡포로 서울 모 영화관에선 상영을 안 한다니! 콘서트 보러 올라갔을 때 보고 오려고 했는데 짜증 난다. 그런다고 못 볼 줄 알고? 다른 영화관에서 보면 되는 거지. 다만 상영관이 그만큼 적어질 테니 흥행은 어렵겠구나 싶다. 설탕 회사 히들이한테 그러는 거 아니다.

독후감은 안 써지면서 수다는 술술 잘만 써지는구나. 일찍 치카치카하고 따듯한 침대에 들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