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인간 - 이석원

2013. 10. 4. 21:19



음악 하는 이석원에 대해선 모른다. 내겐 온전히 작가로 기억되는 이석원. 그의 첫 수필집 <보통의 존재>는 꾸밈없이 담담하고 자연스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름 좀 알린 연예인이 별 생각 없이 나도 책 한 번 내볼까 하는 마음으로 신변잡기를 모아 내놓은 그런 책이 아니어서 좋았다. 그의 소설집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수필과 소설은 꽤 다른 장르이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예 기대하지 않은 건 아니었고 <실내인간>이라는 제목에 마음이 끌려 신간을 덜컥 사들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설은 기대 이상이었다. 소재도 좋았고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 매력적이었고 수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깔끔한 문장 또한 좋았다. 물론, 재미도 있었다.

실연의 충격으로 집에 틀어박혀 지내던 용우는 보증금까지 야금야금 깎아 먹다가 결국 살던 집에서 쫓겨나 낯선 곳으로 이사하게 된다. 새로 이사 한 곳은 싸고 괜찮은 집이었지만 옥상은 절대 쓰지 말라는 이상한 조건이 붙어 있는 곳이었다. 옥상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새로운 집과 이웃들에게 적응해가던 용우는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앞집 남자와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소설은 화자인 용우가 앞집 남자 용휘를 지켜보며 써내려간 관찰 일기에 가깝다. 정말로 사랑했던 이를 잊지 못한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인생 앞에서 용우는, 나는, 당신은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이 소설에 나오는 김용휘라는 인물의 직업은 작가다. 소설, 수필, 동화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그의 글은 출판하는 족족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할 만큼 잘 팔린다. 그렇게 잘 나가는 작가가 무슨 이유로 본명이 아닌 예명으로 책을 내며 신분을 숨기고 집에 틀어박힌 채 실내인간처럼 살고 있는지 그 연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궁금증에 이 소설의 재미가 있다. 책 속에서 만나게 되는 책 이야기나 작가 이야기를 매우 좋아하는데 업계에서 거의 괴물로 소문난 작가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사랑도 삶도 쉬운 것이 하나 없다.


"고통을 견디는 법은 한 가지밖에 없어. 그저 견디는 거야. 단, 지금 아무리 괴로워죽을 것 같아도 언젠가 이 모든 게 지나가고 다시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 오리라는 믿음. 그거만 저버리지 않으면 돼. 어쩌면 그게 사랑보다 더 중요할지도 몰라."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만 아득해져버렸다. "내가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저씨." "믿어. 믿으면 아무도 널 어쩌지 못해." 나는 그가 고마웠다. - P.64

'그래서, 사람의 일생이란 어린 시절의 상처를 평생 동안 치유해가는 과정이라고 하는지도 모르죠.' 나는 그날에야 비로소 그의 유난한 경쟁심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았다. - P.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