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안주>에 이은 북스피어 출판사 두 번째 독자 펀드 도서 <그림자밟기>. 지난해와 다른 점이라면 이번엔 펀드에 참여한 독자라 해도 책을 사서 봐야 한다는 것 정도였다. 보너스로 책을 받는 것도 좋지만 직접 사서 읽는 것도 좋다. 책은 언제나 좋다. 미미여사의 에도 시대물은 알맹이도 좋지만, 통일된 표지 디자인이 정말 예뻐서 책장에 모아놓고 가끔 들여다보면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건 거짓부렁이고) 마음이 풍족해져서 책을 마구 사들이고 싶은 욕심이 조금은 사그라진다. 조금 아주 조금이다. 아무튼,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탐낼 예쁜 책이다.

내가 생각하는 미미여사의 에도 시대물은 괴담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안에 따스한 온기가 가득해서 읽고 나면 언제나 기분 좋아지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열 세 번째 에도 시대물 <그림자밟기>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언가를 양보해야 할 때도 있고,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늦어서 포기해야 할 때도 있고, 사람 사는 일 다 똑같을진대 이렇게 글로 읽고 나면 새삼 더 쓸쓸하고 마음 한편이 서늘해진다. 다섯 번째 단편 '반바 빙의'의 인상이 강렬하게 남아서 더 그런 걸까. 반바 빙의란 산 자의 몸에 죽은 자의 혼을 옮기는 것을 말한다. 빙의가 되고 나면 겉모습은 그대로지만 내면은 죽은 자인 채로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지금까지 읽은 에도 시대 괴담 중에 가장 섬뜩했지만 사이치로의 마음이 아플 만큼 이해돼서 슬프기도 했다. 퇴로가 없는 사이치로의 삶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너무나 슬펐다.

읽어나갈수록 쓸쓸하고 서늘한 온도가 느리게 퍼져 나가는 여섯 편의 괴담이었다.


그렇다면 시험해 볼 가치는 있다는 뜻이다. 그냥 생각할 뿐이다. 이루어질 리 없는 꿈임을 알고 있다. 그래도 사이치로는 생각한다. 그 한 가닥 소망에 매달리다시피하며, 망자처럼 가련하고 고독한 자신의 혼을 위로한다. - P. 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