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 암살 음모에 가담한 죄로 다음날 새벽이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네 명의 사형수. 감옥의 사령관은 그들에게 탈출구 없는 협상을 제안한다. 한 사람이라도 음모의 배후 인물을 밀고한다면 그들 모두에게 사면이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거부한다면 예정대로 사형대 위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배신이냐, 죽음이냐. 목숨과 정치적 신념을 건 도박에서 그들 각자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동료를 배신하고 구차한 목숨을 건질 것인가? 아니면 신념을따라 명예롭게 세상을 떠날 것인가? 짧은 하룻밤 동안 이들 네 명의 사형수가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펼친 거짓말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알라딘 중고 서점에 들렀다가 책 뒤표지에 쓰인 위 문장만 읽고 재미있어 보여서 고른 책인데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멀리서 숲 전체를 볼 땐 좋았는데 막상 발을 들이니 길도 모르겠고 종일 숲길을 헤매고 헤매다가 빠져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고전 및 19세기 초 문학 작품을 본문에 많이 인용하고 있는데 나처럼 이런 분야에 지식이 없는 독자에겐 그 모든 것들이 따분하기만 했다. 줄거리는 반전까지 예상 가능할 정도로 단순한 편인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읽기 시작한 책은 끝까지 다 읽어야 하는 성격이라 꾸역꾸역 끝을 보긴 했는데 해설까지 다 읽어도 나오는 건 한숨뿐. 이탈리아에선 상도 받고 온라인 서점 후기도 좋던데 난 줄거리 자체만 흥미로웠지 글이 좋지는 않았다. 마치 선 보러 나온 자리에서 난 알지도 못하는 자기 일 이야기만 계속 해대는 눈치 없는 남자 같은 책이었다. 앞으로 같은 작가의 책은 독서 리스트에서 제외할 수 있게 됐으니 얻은 게 아예 없지는 않다. 사람이나 책이나 나와 맞는 대상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저울의 양쪽 두 접시는 서로 비교 거리가 되지 않는다. 한쪽 접시에는 빛, 빛나는 젊음이 있다. 나는 존재했었고 존재하고 존재할거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존재의 바다에서 뒤섞이지 않고 좀 더 독특한 하나의 물방울이 될 수 있는 힘이 있다. 여인의 육체를 좀 더 껴안고, 꽃 냄새를 맡고, 웃고 울 수 있는 힘이 있다. 언제든지 나는, 나는, 나는… 하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이 모든 것이 한쪽 접시 위에 올려져 있고, 산만큼 무겁다. 반면 다른 쪽 접시 위에는 전혀 감지할 수 없는 숨결, 너희 모두의 어두운 조국이 있다. 그쪽 접시에서 평등이니 자유니 형제애니 하는 너희들의 말은 이제 너희들에게 너무나 치명적인 말이 된듯하다. 너희들은 그 말들을 생각할 정신, 그 말들을 쓸 손, 그 말들을 말할 입을 잃을 것이다…." - P.4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