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하나비시 에이이치 꽃다운 17세 남고생, 괴짜 부모님과 똑똑한 남동생 피카와 함께 살고 있다. 괴짜 부모가 결혼 20년 만에 처음으로 장만한 내 집이란 것이 다 무너져가는 증축 33년 된 사진관 건물이었으니. 건물을 헐고 새로 짓는 것도 아니고 수리만 하고 사진관 특유의 모습은 그대로 남겨둔 채로 하나비시 가족은 고구레 사진관에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다. 고구레는 사진관을 운영했었던 주인 할아버지의 이름으로 사망 후에도 종종 유령처럼 카운터에 앉아 있는 모습이 목격된다는 주변의 제보가 있다.

고구레 사진관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소녀가 이 사진관에서 현상한 사진이라며 기묘한 사진 한 장을 들고 찾아오게 되고 왜 그런 사진이 찍히게 됐는지 조사해나가는 에이이치와 친구들. 조사 끝에 사진의 의문은 풀리지만 에이이치는 그쪽 방면으로 유명세를 탔는지 기묘한 사진을 들고오는 고객들이 끊이질 않게 된다.

사진을 조사하는 부분은 사실 별로였고 ST부동산 여직원 가키모토 준코와 에이이치의 이야기가 좋았다. 가키모토 준코가 왜 그렇게 날이 서 있었는지 궁금했었는데 후반부에 그 의문이 풀리고 에이이치와 헤어지기 전에 했었던 행동과 말들이 여운이 길게 남았다. 에이이치는 가키모토 준코에겐 잠시 쉬면서 쓸고,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하고, 다음 역으로 향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쉼터같은 존재였던 거다. 비록 가키모토 준코는 떠났지만, 그녀를 새로운 역으로 떠날 수 있도록 해준 건 에이이치였으니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헤어짐이 아니었을까.

<모방범>, <화차>, <이유>를 좋아하는 내 취향으론 내용도 별로였지만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은 문체가 계속 거슬려서 번역의 문제인가 하고 번역가를 찾아봤는데 지금 읽고 있는 <솔로몬의 위증>이나 예전 <화차>도 같은 번역가인 걸 보니 번역의 문제는 아니고 원작의 문체 자체가 이렇게 가벼운 걸까 싶다. 더는 살인은 쓰고 싶지 않다고 하시더니 미미여사께서 일부러 밝고 가볍게 쓰셨나 보다. 하지만 난 아주 별로다. 미미여사의 소설이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아마도 더는 읽지 않을 것 같다. <솔로몬의 위증>이나 최근 출판된 시대물을 보면 쓸데없는 기우 같긴 하지만.


"그 사람은 말이야." 에이이치는 여전히 턱을 괴고 있었다. 꼼짝도 않고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네가 있는 곳에서 뭔가 좋은 경치를 봤을 거야. 그래서 한동안 멈췄던 거라고. 멈춰 서서 팬터그래프를 조정했을지도 모르지. 연결기를 점검했을지도 모르고. 차량을 돌아보며 승객이 잊고 내린 물건은 없는지 확인하고 청소를 했을지도 몰라. 그러고 나서……." 히로시는 손으로 시선을 떨어뜨리고 작업을 재개했다. "다시 발차한 거야." 철로는 이어져 있으니까. - P.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