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여사의 에도 시대 대작 <おまえさん>이 <진상>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출간됐다. 미미여사 소설은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에도 시대 소설을 특별히 아끼는 편인데 이번엔 연애 소설이란다. 게다가 분량도 1100페이지나 되다니!!! 책이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더 읽고 싶어지는 이상한 정복욕을 가진 나로선 읽기전부터 군침을 흘릴만한 책이었다.

북스피어 마포 김사장님께서 이 책을 '어렵다'고 표현하셨는데 상권 중간쯤 읽다 보니 왜 그렇게 표현하셨는지 알겠더라. 내용에 집중하지 않고 잠시 딴생각을 하는 순간 바로 길을 잃는 소설이다. 나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왔던 길을 되짚어갔다. 미미여사의 꼼꼼함은 각각의 독립적인 이야기가 모여 장편을 이루는 복잡한 소설에서 그 빛을 제대로 발하는데 글 쓰는 사람이 아무리 꼼꼼한들 읽는 사람이 대충 읽으면 무용지물. 호흡이 길고 집중을 해야 하는 소설인 만큼 한 번에 읽기보단 천천히 꼼꼼하게 곱씹어 읽으면 더 맛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외면보다는 내면을 가꾸어야 한다는 말로 곱게 포장하고는 있지만 외면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가 그렇지 못한 생명체보다 우위에 서고 더 대접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다만, 인간은 이성이 있기에 잘 포장하고 감추며 살 뿐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예쁜 사람은 서비스 하나라도 더 받는 세상인데 남녀상열지사에서 외모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시발점이 되기에 그 영향력이 상당하다. 외모에 있어 <진상>의 '마지마 신노스케'는 상당히 불리한 입장이다. 관리라는 신분과 남자라는 성별 때문에 대놓고 떠들지만 않을 뿐 본인도 주변인들도 모두 잘 알고 있다. 모든 이들이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유미노스케'와는 여러모로 대조되는 인물이다. 이 소설엔 여러 가지 이야기 축이 있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 축은 마지마 신노스케의 연애담이었다. 이즈쓰 헤이시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옴팡눈에 감자조림처럼 생긴 마지마 신노스케가 한 여인을 마음에 품는 순간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그 감정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 측은하고 마음 아픈 일이기는 했지만, 한편으론 흥미로운 일이기도 했다. 본래부터 타고난 생김새는 바꿀 수 없지만 (수술을 제외하면) 어떤 일을 겪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느냐에 따라 외모는 시시각각 변한다. 소설 속에서 이즈쓰 헤이시로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마지마의 외모를 평가하는데 '이즈쓰 나리의 마지마 외모 평가'가 어떤 식으로 달라지는지 주목해서 읽는 것도 이 소설을 읽는 재미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외면은 생각보다 중요하지만 내면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

마지마 신노스케 다음으로 마음에 남는 인물은 산타로의 친모 '오키에'였다. 자신만 편안하게 살기 위해 자식을 버린 냉정한 어미로 비쳤던 오키에의 진상(眞相)은 백퍼센트 수긍할 수는 없지만, 이해의 범주 안에 있었다. 멀게만 보이는 감을 따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던 오키에.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상처받기도 했지만, 어차피 삶이란 건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는 법이다. 오키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고 이제 감은 그녀의 눈앞에 있다. 자식을 버린 어미이긴 하지만 그래서 미워하고 싶지만 난 오키에가 밉지 않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마지마 신노스케와 오키에를 중심으로 리뷰를 쓰긴 했지만, 이 두 사람은 <진상>의 일부일 뿐이다. 더 많은 진상(進上)들의 진상(眞相)이 궁금하다면 소설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길고 긴 여행이 되겠지만, 쉬엄쉬엄 가면 그만이다. 긴 여행의 끝엔 분명 무언가 하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멀리 보이는 감을 빤히 쳐다보던 아이였어요. 저 감은 틀림없이 달 거야, 이번에는 진짜 단감일 거야. 그러니까 어떻게든 저기까지 다가가서 나무를 타고 올라가 이 손으로 따 먹고 말테야, 하고." 저 감을 차지하고 말리라. "제방을 넘고 논두렁길을 달리고 진흙탕에 발을 빠뜨려 가며 논을 가로질러서, 지금은 멀게 보이는 감이지만 반드시 따고야 말겠다고 죽자 사자 달려가는 거예요. 그래요, 저 감은 헛것이 아니니까요." -  하권 P.279~280

사람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다만 골치 아픈 것은, 되고자 하지 않아도 뭔가가 되고 말 때도 있다는 점이다. 감이 되기도 하고 전복이 되기도 하고 유령이 되기도 하고 부처가 되기도 하고 잠시 신이 되어 보기도 한다. 그래도 결국은 인간이다. 인간으로 있는 것이 가장 어울린다. - 하권 P.54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