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 이언 매큐언

2013. 5. 22. 21:24



철없는 어린 아이의 순수함과 무한한 상상력은 때론 독이 된다. 이제 막 새로운 인생과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 젊은 연인에게 독은 지나칠 만큼 치명적이었고 그들이 꿈꿔왔던 삶은 독에 녹아 허무하게 사라졌다. 속죄는 불가능하다.

얼마 전에 본 매즈 미켈슨 주연 영화 <더 헌트>에선 유치원생의 말 한마디에 한 남자가 사회를 비롯한 모든 관계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매장당하는 현실을 보았다. 과연 내가 영화 속 이웃이었다면 그들과 달랐을까? 란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었기에 영화는 더욱 답답하고, 불편했다. <더 헌트>에선 클라라가 무엇을 보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지만, 이 책 속에선 브리오니가 무엇을 보았는지가 두 사람의 삶 자체를 바꿔 놓을 만큼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열 세 살의 브리오니는 자신이 본 것을 굳게 믿었고, 그에 따라 행동했고, 행동은 결과적으로 비극을 낳았다. 그 당시의 브리오니는 감성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 소녀였고, 그 어떤 거짓도 악의도 없었다. 모든 것은 오해였고 사실과 진실을 구별할 수 없었던 어린 브리오니는 평생 속죄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브리오니는 과거 자신의 행동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속죄하려 하지만 애초에 그 속죄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조차 모르겠다. 두 남녀의 삶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달라졌는데 이제 와서 누구를 위한 속죄란 말인가. 로비와 세실리아, 어쩌면 브리오니까지 모두 안쓰러워지는 이야기였다.

처음부터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글을 쓰는 작가가 있고, 어느 정도 적응 시간이 필요한 작가가 있고, 아무리 읽어도 적응이 안 되는 작가가 있는데 이언 매큐언은 두 번째에 해당한다. 초반 70페이지 정도까지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섬세한 묘사에 적응이 필요했는데 고비를 넘기니 잘 읽힌다. 내가 좋아하는 문체는 아니지만, 남성 작가인데도 섬세하고 우아한 느낌이 드는 매력있는 글이었다. <어톤먼트> 영화는 마지막 부분만 빼고는 원작에 충실히 만들었던데 심리 묘사 때문인지 역시 원작만은 못했다. 따지고 보면 모든 일의 원흉은 초콜릿 변태인데 하필 그 초콜릿 변태를 베니가 연기했었다니!!!


그녀는 정말로 남을 모방한 소위 현대적 글쓰기 양식 뒤에 숨어서 의식의 흐름 -그것도 세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의식의 흐름- 속에 죄책감을 익사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녀의 소설에 없는 것은 그녀의 삶에도 없었다. 그녀가 삶에서 정면으로 부딪치기 싫어했던 것은 소설에서도 빠져 있었다. 진정한 소설이 되기 위해 빠져서는 안될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 P.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