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요네하라 마리는 1960년에 체코슬로바키아 수도 프라하로 건너가 5년간 외국인 공산당 간부자제 전용학교인 소비에트 학교에 다니게 된다. 이 책은 소비에트 학교에서 요네하라 마리가 만나게 된 세 명의 친구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 시절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열 살부터 열다섯 살 때까지 5년간의 생활을 몇십 년이 지난 후까지도 이렇게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어린 나이에 많은 일을 겪어서인지 보통의 또래보다 훨씬 깊고 성숙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또 한 번 놀랐다. 소비에트 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1995년 저자가 세 명의 친구를 찾으러 가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리스의 파란 하늘을 그리도 그리워한 몽상가 리차, 새빨간 진실과 함께 미워할 수 없었던 거짓말쟁이 아냐, 베오그라드라는 하얀 도시의 매력을 알게 해준 지적이고 침착한 야스나. 몇십 년 만의 친구들과의 재회는 저자와 친구들은 물론, 독자인 나에게도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동유럽 정세도 그들 자신도 많은 일을 겪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변하지 않은 건 소비에트 학교에서의 기억뿐.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변한다.

소녀 시절 프라하에서의 5년은 그 후 저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저자가 선택한 러시아어 동시통역사라는 직업부터가 그렇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확실히 시야와 사고의 범위가 넓고 깊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나라 사람을 접하고서야 사람은 자기를 자기답게 하고, 타인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려고 애를 쓴다는 저자의 글에 크게 공감하는 바이다. 더는 저자의 새로운 글을 볼 수 없음이 아쉽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나라 사람을 접하고서야 사람은 자기를 자기답게 하고, 타인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애를 쓴다는 사실. 자신과 관련된 조상, 문화를 이끈 자연조건, 그밖에 다른 여러 가지 것에 갑자기 친근감을 품게 된다고. 이것은 식욕이나 성욕과도 같은 줄에 세울만한, 일종의 자기보전 본능이랄까 자기긍정 본능이 아닐까. - P.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