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먼 옛날에 사뒀던 책. 이 책을 그동안 안 읽은 이유는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다. 픽션이던 논픽션이던 아이들이 고통받거나 고생하는 이야기는 마음 아파서 잘 안 보고 안 읽는 편이다. TV 프로그램 중 가장 싫어하고 절대 안 보는 게 바로 아픈 아이들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성인들 아픈 것도 마음이 찢어지는데 아이들은 정말 도저히 볼 수가 없다.

성공한 사업가 아버지를 둔 파슈툰인 도련님 아미르, 하자라인이자 아미르를 모시는 하인 하산. 소설은 아미르와 하산 두 아이의 삶에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여과 없이 투영하여 보여준다. 연을 쫓으며 지냈던 행복한 시절도 잠시 연날리기 대횟날 생긴 사건 때문에 두 아이는 점점 멀어지게 되고,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발발한 전쟁 때문에 두 아이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미국으로 망명 한 아미르는 점점 미국 생활에 적응하며 결혼도 하고 작가로서 성공하게 되지만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하산에 대한 죄책감이 남아있다.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던 어느 날 아버지의 옛 친구 라힘 칸에게 아프가니스탄에서 하산의 아들을 데려와 달라는 부탁을 받는 아미르. 그는 잠시 망설이지만 어린 시절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게 된다. 다 읽고 나서 작가 자신이 아프가니스탄 출신이기에 쓸 수 있었던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고, 아미르와 하산의 이야기에 배경처럼 깔리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이 굉장히 마음 아픈 소설이었다.

아프가니스탄 하면 떠오르는 것은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탈레반, 알 카에다, 9·11테러, 오사마 빈 라덴, 지금도 끝나지 않은 전쟁 정도다. 아프가니스탄은 오랜 전쟁과 내전 때문에 삶의 터전이 완전히 망가졌고 아이들은 다섯 살이 되기 전에 대부분 사망하며 살아남은 아이도 용병이 된다고 한다. 결국, 소수의 이기심으로 인해 다수의 죄 없는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아무런 희망 없이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던 전쟁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하루빨리 아프가니스탄에도 평화가 찾아들어 고통받는 이들이 사라지길 바랄 뿐이다.


사진을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러다가 뭔가를 깨달았다. 방금 전에 했던 생각에도 내 마음이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랍의 방문을 닫으면서 용서라는 것이 그런 식으로 싹트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용서란 요란한 깨달음의 팡파르와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소지품들을 모아서 짐을 꾸린 다음 한밤중에 예고 없이 조용히 빠져나갈 때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닐까? - P.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