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읽었던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에서 6살의 조금은 어른스러운 중빈이를 만났었다면 이 책에선 아직 아기 같은 3살의 중빈이를 만날 수 있었다. 30대 엄마와 36개월 아들이 함께 처음 떠난 배낭 여행지는 터키다. 나도 굉장히 가보고 싶은 나라라서 그동안 터키 여행기도 꽤 읽었었다. 하지만 이 여행기엔 36개월 아이가 있어 다른 여행기보다는 조금 느리고 조금 특별하다. 여행기 대부분은 읽고 나면 그 나라의 관광지나 맛있는 음식, 인상적인 현지인들이 떠오르면서 나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오소희 작가의 여행기를 읽고 나면 그 나라 자체보단 작가가 여행지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 깊게 남는다. 내게 결핍된 무언가를 그녀가 충족시켜주는 기분이다. 그녀의 육아 방식도 마음에 든다.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느끼고 깨닫게 해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진대 단둘이 떠난 여행지에서 큰 충돌 없이 아이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그녀가 존경스러워졌다. 중빈이처럼 세상의 모든 아이가 정신적 풍요를 지닌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터키 이곳저곳에서 만나게 되는 한국인의 불편한 자화상은 글을 읽는 나까지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지만 소희와 중빈의 여행기는 이번에도 즐거웠다.


내가 10대였을 때는, 누군가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내가 하기 어려운 일을 앞장서 해준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에 불과했다. 내가 20대였을 때는, 타인에게 봉사하는 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지만, 자신의 삶을 성실히 영위하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30대인 내게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위대한' 일이며, 자신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자신의 삶을 성실히 꾸려나가는 것에도 부단한 노력과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한 노력과 결심이 조용히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까닭이다. - page. 240~241

로라는 모르고 있었다. 관계의 많은 부분이 희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자신이 희생하는 것들과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데 그것을 얻을 수 없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그 '무언가' 를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가부터 나는 좋아하는 것을 위해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으면서 '얻을 수 없다' 며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들의 오해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달리, 그 '무언가' 를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희생하지도 않는 것이다. - page. 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