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세이초 단편 미스터리 걸작선 그 첫 번째 <잠복> 단순히 재미로만 따져 점수를 주자면 올해 읽은 세이초 책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세이초의 미스터리엔 일상적인 소재와 인물이 등장하고 트릭보다는 등장인물의 심리묘사와 인생담 같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놀랄만한 트릭이나 반전 없이 이야기의 힘만으로 지루하지 않은 미스터리 소설을 만들어 낸다는 것 자체가 새롭고 흥미로웠다. 세이초의 담백하고 간결한 문장은 오래전 <모래그릇>을 읽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었는데 올해부터 북스피어와 모비딕에서 새롭게 출간하고 있는 세이초 책들은 번역 때문인지는 몰라도 세이초 문장의 특징이 더 도드라지게 느껴진다. 저자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간결하게 쓰인 문장은 그 누구의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그저 덤덤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야기 속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는 일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책에는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얼굴', '일 년 반만 기다려', '카르네아데스의 널'이 인상적이었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죄짓고 살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던 '얼굴', 마지막 남자의 한 마디가 소름 돋았던 '일 년 반만 기다려', 낯선 제목이었던 '카르네아데스의 널'은 옳고 그름의 판단이 모호한 문제였다. 바다에서 조난을 당했을 때 강한 사람은 널을 잡아 살아남고 약한 사람은 널을 잡지 못해 바다에 빠져 죽는다. 이런 긴급 상황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는다면 크게 죄가 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과연 현대 사회에서도 '카르네아데스의 널'은 죄가 되지 않는 것일까. 강자가 약자를 이기는 건 자연의 순리이고 방법이 어떻든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을 부당하다 여기는 건 약자의 변명일 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