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백 - 김려령

2012. 10. 7. 22:39



귀엽고 유쾌한 네 명의 아이들 때문에 읽는 내내 행복했던 책이다. <완득이> 때도 느꼈지만 김려령 작가의 유머 코드는 나와 정말 잘 맞는다. 이번에도 몇 번이나 혼자 낄낄거리면서 읽었다. 해일, 진오, 지란, 다영 이 네 명의 아이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때론 기쁘고 때론 슬프고 때론 즐겁고 때론 화도 났지만 모두 따뜻했다. 이야기 전체가 따뜻한 공기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 안에 잠시 머물러 있는 나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일곱 살 때부터 습관적으로 도둑질해 온 해일. 책 첫머리에 '나는 도둑이다.'라는 문장을 읽고 단순하게도 문제아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읽다 보니 해일의 도벽보다는 가족들에게 더 관심이 쏠렸다. 아파트 관리소장 아버지, 가발 기술자였던 어머니, 감정설계사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을 하기 위해 연구에 빠진 형 해철, 그리고 해일. 딱히 부자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가족이지만 해일이네 가족에겐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에서 나오는 따뜻함이 있었다. 온 가족이 병아리 키우기에 정성을 들이는 모습이 어찌나 행복해 보이고 귀엽던지….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롭고 따뜻한 품성은 절대 돈 주고도 사지 못하는 것이라서 모든 아이들이 해일이처럼 따뜻한 가족 안에서 자라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일이는 이런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기에 자신의 가시를 고백하고 뽑아낼 수 있었을 거다. 기본적으로 해일 자신이 강한 사람이기도 하고…. 온몸에 돋친 가시를 무기 삼아 사는 사람에겐 가시 고백이란 어려운 일이다.

온통 해일이네 얘기인 걸 보니 책 읽으면서 해일이가 꽤 부러웠었나 보다. 이 책도 영상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 내 취향으론 완득이보다 이 책이 훨씬 마음에 드는데…. 영상으로 만들어 놓으면 굉장히 풋풋하고 밝고 예쁠 것 같다. 자칫하면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를 무겁지 않고 유쾌하게 풀어낸 것도 마음에 들었던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