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 - 미야베 미유키

2012. 9. 2. 23:08



미미여사의 새로운 에도 시대물 <안주>가 출간됐다. 미미여사의 에도 시대물은 워낙에 좋아하지만 <안주>는 독자 펀드까지 참여한 책이라 그런지 출간이 더 기다려졌었다. 책 받고 나서 한 손에 꽉 차는 두툼한 두께에 흡족한 미소를 지어주고~ 분량으로 보면 충분히 두 권으로 나눠서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한 권으로 만들어 준 양심 있는 출판사 북스피어에게 박수를! 에도 시대물은 표지와 폰트도 하나같이 얼마나 예쁜지 책장에 꽂혀 있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 이번엔 홍보 때문인지 띠지도 있었는데 띠지의 질감이나 색감도 오묘한 것이 내 취향! 껍데기 칭찬은 이쯤 해두고 이제 본론으로.

첫 번째 이야기 '달아나는 물'의 오히데리님과 헤이타는 귀엽기만 했는데 물이 달아난다니 곁에 두기엔 번거로운 친구들이다. 두 번째 이야기 '덤불 속에서 바늘 천 개'는 요괴나 유령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야기였고 뭔가 뒤끝이 개운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간 부적 오카쓰는 후에 미시마야의 새로운 식구가 된다. 그리고 표제로 쓰인 세 번째 이야기 '안주'는 구로스케가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마음이 아팠다. 서로 가까이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신자에몬 부부와 수국 저택의 구로스케. 신자에몬이 구로스케를 타이르는 다정한 말들을 읽으면서 괜스레 나까지 눈물이 났다. 신자에몬 부부가 옆에 없어도 이제 구로스케는 전처럼 외롭지 않겠구나. 여전히 외롭긴 하겠지만, 그들을 만나기 전의 외로움과는 조금 다를 거라 생각했다. 신자에몬이 작은 선생에게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옛날에 나는 사람을 싫어했다. 비뚤어지고 고독을 좋아해서, 그저 학문에만 매진하는 걸 마음 깊은 곳에서 자랑스러워했지. 이 세상에는 어리석은 놈들만 넘쳐난다, 나는 내 귀중한 시간을 할애해가며 어리석은 자들이 헤엄치는 속세라는 연못에 몸을 담글 생각은 없다고 말이다. 당치도 않은 자만이었어. 세상에 섞이고, 좋든 나쁘든 사람의 정에 닿지 않는다면, 학문이 무슨 소용이고 지식이 무슨 소용이겠느냐. 구로스케는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사람 옆에서는 살 수 없는 그 기교한 생명이, 내 오만에 충고해 준 것이다."

사람은 변한다. 몇 살이 되어도 변할 수 있다. 라고 미미여사는 오치카의 마음을 빌어 말하고 있다. 나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몇 살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큰일을 겪고 나서 변하는 예도 있지만 그런 일은 극히 드물고 사람은 대부분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정적인 시선으로 사람을 보는 나지만 안주를 읽으면서, 신자에몬이 했던 말을 곱씹으면서 조금은 긍정적으로 사람을 바라봐도 되는 걸까라는 마음이 안에서 살짝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런 안온하고 희망적인 마음은 책에서 눈을 돌리는 즉시 빠르게 사라진다. 이상은 이상일 뿐이다. 이런 나도 오만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