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수필을 좋아하는 나에겐 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책이었다. 채소의 기분이라니! 제목이 심하게 귀엽잖아. 예쁜 컵도 준단다. 본능에 충실히 클릭질을 한 결과 200페이지 남짓한 양장 책 한 권과 귀여운 머그컵 하나를 얻었다. 결과물을 손에 넣고 보니 책 가격에 머그컵 가격도 같이 책정 되어 있는 것 같은 약간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뭐 어쩌겠나. 그냥 재밌게 책을 읽어야지요. 이번 수필집에도 피식 피식 웃게 되는 소소하고 별거 아닌 글들이 많아서 즐거웠다.

작가가 소설보다 수필을 쓰는 걸 더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는데 어렵게 쓴 글치고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이 편하게 읽히는 걸 보면 이러니저러니 해도 작가는 작가구나 싶었다.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닌 이상 그의 고충은 알 수 없으니 이런 소리도 쉽게 하는 거겠지만. 나이키가 만들었다는 궁극의 조깅코스는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 얼마나 좋길래 궁금하다. 궁금해! 하루키에게 일 년에 한 두 번 출몰하는 초콜릿을 좋아하는 성질 급한 난쟁이는 나에게도 출몰 한다. 평소에 잘 먹지 않지만 가끔 미친 듯이 먹고 싶어지는 음식이 초콜릿 말고도 몇 가지 더 있는데 그럴 땐 몸이 원하는 거로 생각해서 먹어주려고 노력한다. 표제로 쓰인 채소의 기분과 바다표범의 키스 내용이 궁금했었는데 어감은 채소의 기분이 귀여웠지만, 내용은 바다표범의 키스가 압도적으로 인상적이었다. 동맥경화에 좋다는 바다표범 오일을 생기름으로 먹었던 경험을 썼는데 '빌어먹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매일 아침 그 냄새 나는 오일을 먹었을 하루키를 생각하니 또 피식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쓸데없는 일에 고집부려서 고생한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삽화는 안자이 미즈마루보단 오하시 아유미 쪽이 더 나은 것 같다. 안자이 미즈마루는 너무 내 취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