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 박범신

2012. 4. 2. 20:43



곧 영화 개봉을 앞둔 박범신 작가의 소설 <은교> 원작 소설에 대한 궁금증을 못 이기고 빌려 읽었다. 작가의 필력때문인지 소설은 순식간에 읽혔다. 평생 시 하나만을 써온 위대한 시인 이적요, 그의 제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서지우, 그리고 그들의 삶에 날아들어 온 열일곱 살 소녀 한은교. 세 사람이 서로에게 얽히고설켜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유혹적이었다. 스승과 제자의 엇갈린 사랑과 증오가 만들어 낸 비극... 그리고 그들의 또 다른 사랑 은교...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노화하고 끝내는 소멸한다. 이 당연한 자연의 섭리를 유독 인간들만이 추하게 여기며 산다는 것을 이 소설을 읽고 새삼 깨달았다. 몸이 노화된다고 해서 마음마저 노화되는 것은 아닌데 '나이 들어 주책없다'라는 생각으로 노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당연한 듯 자리 잡고 있다. 나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처음엔 일흔 노시인 '이적요'가 거북했다. 하지만 글을 읽어 나갈수록 내 안에 그런 생각들이 사라져 감을 느꼈다. '나이 들어 주책없다'라는 생각이 '나이 들어서도 저런 감성을 가질 수 있음이 부럽다'로 바뀌었다. 몸과 마음이 함께 늙는 것과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늙지 않는 것. 어느 쪽이 더 괴로운 걸까? 내가 노인이 되는 그때엔 알게 되려나.

소설로서 매력도 있고 재미도 있었는데 읽는 내내 거슬렸던 것이 본문에 수도 없이 나오는 '처녀'라는 단어였다. 작가가 의도한 '처녀'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이해력 부족한 나는 알 수 없었지만, 그저 단순히 열일곱 소녀에게 '처녀'라는 단어를 붙이고 성적인 대상으로 보는 시선과 남자들의 판타지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내용이 거북했다. 읽는 내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