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제단 - 심윤경

2012. 1. 18. 21:32



다 쓰러져가는 종가 효계당을 혼자 힘으로 일으켰고 자신의 가문을 지키는 일을 평생 업으로 살았던 할아버지, 종손이었지만 종손으로 살기보다는 사랑하는 여인의 남자로 살길 바랬던 아버지, 수제 초콜릿 상점에서 일하는 생모, 남편이 바깥에서 낳아온 자식을 종손으로 길러야 했던 또 다른 어머니 해월당, 서자로 태어났으나 손이 귀한 조씨 집안에 종손 노릇을 하게 된 나 조상룡. 안방마님 없는 종갓집 살림을 도맡아 하는 달시룻댁과 그녀의 모자란 딸 정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미 죽어 효계당 귀신이 된 지 오래고 넓디넓은 효계당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할아버지와 나, 달시룻댁과 정실 네 사람뿐이다. 소설 속 나와 할아버지는 종가의 전통과 위상을 지키는 일을 사이에 두고 끝없이 갈등을 빚는다. 뼛속까지 종가 사람인 대쪽같은 할아버지와 서자 의식에 사로잡혀 제대로 된 종손이 되지도 못하고, 자신의 아버지처럼 그곳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는 나. 그런 할아버지와 나 사이에 파인 골은 넓고도 깊었다. 효계당에 사는 이들은 저마다 그곳을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족쇄 하나씩을 다리에 차고 있었다.

효계당에 대대로 내려오는 언간의 내용이 이야기 중간마다 등장하는데, 문장 하나하나는 매력적이었지만 그 내용 자체는 숨이 턱턱 막혔다. 도대체 종가가 무엇이며 전통이 무엇이며 종손이 무엇이기에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짐승만도 못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답답하다 못해 분노를 느꼈다. 여자의 몸을 빌리지 않으면 잘난 그네들도 태어나질 못하거늘... 결국, 효계당도 아버지도 해월당 어머니도 나도 할아버지까지도 제단에 바쳐져 불타올랐다. 그 자리에 남은 건 재뿐이다.

작년에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고 나서 반해버린 심윤경 작가. <달의 제단>은 작가에게도 나에게도 두 번째로 만나는 소설이었다. 첫 시작이 성공적이었기에 작가에겐 꽤 부담이었을 두 번째 작품. 첫 소설과는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전혀 다른 매력을 뽐내는 두 번째 소설이었다. 그래서 호감도는 더욱 상승했고 세 번째 만남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