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아나운서, 기자. 꽤 근사해 보이는 20대를 보냈지만 무엇하나 제대로 마음을 정착시키지 못했던 그녀는 20대 후반에 훌쩍 여행을 떠난다. 프랑스, 독일, 영국, 터키, 이집트, 일본, 몽골…. 여행하는 2년 동안 하늘에 떠있었던 시간만 80시간이라고 한다. 그녀가 여행가방 속에 꼭꼭 담아두었던 이야기보따리 속엔 설렘도 가득 담겨 있었고, 짜증도 잔뜩 묻어 있었고, 진한 알코올 냄새도 폴폴 풍겼고, 등골 오싹한 한기도 느껴졌고,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도 있었고, 푸른 바람도 불어왔고, 까만 하늘에 쏟아 질듯 반짝이는 별도 가득 떠있었고, 마른 야크 똥 냄새도 좀 났다.

나는 가장 마지막에 나온 '몽골' 여행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몽골의 모습이 좋았다. 몽골인들은 알타이의 바람을 '푸른 바람'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푸른색에 행운을 담는다는 믿음 때문이라는데 그런 것 보다 푸른 바람! 내 닉네임이 아니던가~ 책 읽다가 괜스레 반가워졌다. 이 닉네임이 나에게도 행운을 가져다주면 좋으련만 행운을 가져다주는 건 아직도 잘 모르겠다. 책 읽다가 발견한 그녀와 나의 공통점이 있었으니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애교 없는 무뚝뚝한 성격이라는 점이다. 그런 그녀에게 몽골이 잘 맞았으니 나에게도 왠지 몽골이란 나라가 잘 맞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애교 없고 무뚝뚝하고 사교성도 없고 말까지 없으니 나에겐 다른 누군가와 친해지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엄청난 스트레스와 에너지 소모를 요구하는 일이다. 나이 들면 서부턴 어차피 인생은 혼자야! 를 외치며 아예 친해지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이런 성격 덕분에 인간관계라고 불릴만한 관계도 거의 없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사람들과 복닥거리며 사는 게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홀로 지내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혼자 놀기에도 시간은 부족하기만 하다.

여행이란 건 참 좋은 것 같다. 어디론가 떠나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지금 내 자리로 다시 돌아오기 위한 여행. 방전된 배터리를 새롭게 충전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 이 책에서도 나오는데 여행을 하다 보면 보는 것과 먹는 것과 자는 것 중에 한가지는 포기하게 될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럴 때 내 경우엔 먹는 걸 포기하는 편이다. 외국이라고 해봤자 일본 몇 번 가본 게 전부이지만 그 여행들을 되짚어볼 때 나에겐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이 청결한 잠자리와 욕실 그리고 마지막이 먹는 것이었다. 평소 생활 습관을 봐도 역시 먹는 게 뒷전이긴 하다. 먹고 싶어서 먹는 다기보단 배가 고파서 어쩔 수 없이 먹을 때가 잦아서 한 알 먹으면 영양에도 문제가 없고 온종일 배가 부른 알약이 개발됐으면 좋겠다. 그런고로 먹는 걸 우선으로 삼는 사람과의 여행은 불가능할 것 같다. 아~ 그리고 나는 여행 가서 내 사진조차 한 장도 안 찍어 오는 사람인지라 자기 사진을 꼭 찍어서 남겨야 하는 사람도 안된다. 어디 갈 때마다 나보고 사진 찍어 달라고 하면 짜증 나서 사진기 내던질지도 모른다. 여행은 정말 취향이 맞는 사람하고 가야지 안 그러면 서로 불편하기만 하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 같이 갈 수 없으면 차라리 혼자 가는 여행이 나을 텐데 소심쟁이인 나는 아직 온전하게 혼자 여행 해 본 적은 없다.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좀처럼 실행에 옮겨지진 않는다. 아~ 기차 타고 훌쩍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