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추리 소설은 내 취향과 맞지 않는 편이고 일본 추리 소설을 재밌게 보는 편인데 우리나라 추리 소설은 이 작품이 처음이었다. 다 읽고 난 뒤의 소감은 매우 만족이었다. 지은이 소개에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면서 수수께끼 풀이와 트릭 위주의 본격 미스터리를 지향한다.'라고 쓰여있는데 소갯글과 딱 떨어지는 작품이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져 붉은 집이라고 불리는 집에 사는 남씨 일가와 서씨 일가의 3대에 걸친 4번의 살인사건을 어둠의 변호사로 불리는 '고진'과 그의 경찰 후배 '유현'이 해결해가는 과정이 주 내용이고 내용만 놓고 보자면 크게 특별한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전혀 보이지 않는 사건의 진실을 작은 실마리부터 하나하나 샅샅이 조사해서 마지막 커다란 하나의 진실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꽤 짜임새 있고 정교해서 놀라웠다. 3대에 걸친 살인사건의 진실과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고 나서 이제 다 끝났구나 싶어서 맥이 탁 풀렸을 즈음 마지막에 또 한 번의 충격을 던져주고 모든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나는 이 작품의 마지막 마무리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쉽게 읽히고 재미있었지만, 내용 전반에 깔린 핏줄에 대한 집착과 마치 성녀처럼 그려지는 남진희의 존재, 사건의 많은 부분을 심증으로 추론하고 있다는 점 등 어설픈 부분도 많은 작품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부터 완벽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동안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야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얻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모든 것의 처음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작품이 우리나라 추리 소설의 숱한 시행착오 중에서도 의미 있는 시행착오로 남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작가에 대해서 한마디 덧붙이자면 서울대를 졸업하시고 현재 판사로 재직 중인 분이 이리 글까지 잘 쓰시다니요!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