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에 공연 본 뒤로 처음이니까 무려 일 년 삼 개월 만에 보는 오라방이었다. 내가 오라방의 팬이 된 지도 올해로 20년. 그중에 12년은 음악 듣고 방송 보는 걸로 만족했던 어리고 순수하지만, 경제능력은 제로의 팬이었고, 성인이 되고 나서 본격적으로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게 2002년 8집 발표 이후부터니까 아직 8년밖에 안 됐다.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노래도 오라방 노래고, 가장 많이 본 공연도 오라방 공연이다 보니 내 노래를 듣는 귀와 공연을 보는 눈은 오빠의 수준을 기준으로 맞춰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공연 보러가서 만족하고 오는 경우는 드물다. 23일부터 공연이었고 내가 본 25일에는 연속 2회 공연이어서 목 상태가 걱정스러웠는데 생각보다 목소리는 괜찮았는데 (물론 내 막귀로 듣기에만 괜찮았고 사실 오빠는 아프셨다 ㅠ.ㅠ) 오빠 눈 빨갛게 충혈된 거 보고 마음 아팠다. 눈 보고 엄청 피곤해 보여서 데리고 들어가서 재우고 싶을 지경이었다.





20주년 공연이라 기대하고 갔었는데 기대보다 좋았던 부분도 있었고 이건 아니다 싶은 부분도 있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난 입에 발린 좋은 말만 하는 팬은 절대 못되는지라 이번에도 솔직히 쓰련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기대 이하였던 부분부터 짚어보자면 첫째로 오프닝, 둘째로 로미오&줄리엣 무대, 마지막으로 이번에도 변하지 않은 팝송&댄스 메들리 정도다. 오프닝은 난타까지는 좋았는데 처음 노래하며 등장하는 사람이 오라방이 아니란 게 난 좀 별로였다. 게스트 전혀 없는 오라방 공연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다른 가수가 나와서 그것도 오프닝에 노래 부르는 건 싫더라. 아무리 오빠 노래고 앞부분만 부른다 해도 싫은 건 싫은 거다. 로미오&줄리엣은 이 부분만 따로 놓고 보자면 괜찮았는데 20주년 공연과는 안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아마 평소처럼 크리스마스 공연이었다면 잘 어울렸다고 느꼈을 거다. (손발이 오그라들긴 했어도 아직까진 팬심으로 극복 가능) 그리고 팬들은 지겹다는 소리를 외칠 정도로 변하지 않는 팝송과 댄스곡 레파토리... 이건 진심으로 심각하게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곡 수가 다른 때보다 적은 거 같아서 좀 아쉬웠고... 안그래도 완벽주의자인 오라방에서 더 신경 써달라고 투덜거리는 게 미안하기도 한데, 충분히 가능하고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니까 이렇게 투덜거릴 수도 있는 거 아닐까... 팬들의 귀와 눈을 높여 놓은 건 오라방이니 오라방이 끝까지 책임지셔야지 어쩌겠어요.





앞서 말한 부분만 제외하고는 정말 다~~~ 좋았다. 몇 년 전에도 같은 장소에서 공연 봤었는데 음향도 그때보다 좋았고 스크린에 나오는 영상과 딱딱 맞아떨어지는 공연 진행을 보면서 역시 오라방이구나 싶었다. 데뷔 20년, 1700여 회의 공연의 내공이 나오는 것이지... 공연 보다가 맥이 끊기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데 오라방 공연은 그런 게 없어서 정말 좋다. 코너와 코너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스무스하게 넘어가서 좋다. 본인 노래가 아닌 후배들 댄스곡에 춤추는 것도 신선했고, <로미오&줄리엣> 영상에서 그 귀염귀염열매를 먹은 포즈! 절대 잊히지 않을거 같다. 일렉 기타 연주로 불러준 <우연히>도 좋았고, <나비효과>부를때 하늘을 날아다니던 나비도 예뻤고 (오빠가 이름이 뭐라고 말해줬는데 잊어버렸다. 이 망할 기억력!) 지겹다고 썼지만, 팝송 메들리는 들을 때마다 좋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she> 불러줘서 좋았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좋았던 건 <그 후로 오랫동안>, <My way>, <You are so beautiful> 거의 마지막 부분에 부른 세곡인데 아... 정말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음반이며 방송, 공연에서 들었던 그 수 많은 <그 후로 오랫동안> 중에서 25일에 들었던 <그 후로 오랫동안>이 가장 좋았다. 오라방 앨범 중에선 4집을 가장 좋아하고, 대중적으로 히트한 곡 중에서는 <그 후로 오랫동안>을 가장 좋아하는데 이날 들었던 <그 후로 오랫동안>은 내 인생 최고의 <그 후로 오랫동안>이었다. 이번 콘서트의 부제이기도 한 <My way>는 들으면서 만감이 교차하더라. 내 눈앞에서 노래하는 오빠와 그 뒤 스크린에 흐르는 오빠 사진과 <My way> 가사... 가사가 지난 20년 동안의 오빠의 한결같은 음악에 대한 열정과 고집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 같아서 찡~ 했다. 그리고 앵콜때 불러준 20주년 기념 앨범에 실린 신곡 <You are so beautiful> 사실 이번 공연 때 가장 라이브로 듣고 싶었던 곡이었는데 정말 좋았다. 마지막 부분 가사 I love you, I need you, I'm still here with you... 감동 ㅠ.ㅠ





또 하나 좋았던 건 땡깡앵콜을 안 했다는 거. 앞으로도 오빠가 독하게 마음먹으시고 땡깡앵콜 자체를 없애버리셨으면 좋겠다. 이번처럼 계속 안 나와 주시면 서서히 팬들도 포기할 거라 생각한다.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 나도 마찬가지지만 몇 시간 동안 공연한 오빠를 공연이 끝난 후에도 억지로 불러내는 건 아니라고 본다. 내 뒤에 팬들이 땡깡앵콜을 보고 '진상짓'이라고 표현하던데 그 말 들으면서 격하게 공감했다. 팬들도 반성하고 이젠 진상짓 좀 그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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